정권의 퇴행이 역사의 퇴보가 되서는 안 된다. (24.05.17)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불과 2년이다. 그 2년 만에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골병이 깊어졌다. 골병은 지병이다. 오래된 병이다. 그러니 지금의 골병 현상은 윤석열 정권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윤석열 정권의 책임이 가볍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랜 지병을 지닌 자에게 견딜 수 없는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 오랜 지병의 원인을 백낙청 교수는 분단체제의 결과물로 보았다. 옳은 말이다. 탁월한 통찰력이다.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남북갈등은 휴전 이후 금방 남남갈등으로 번져갔다.

남남 갈등은 이념 갈등을 빙자하여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를 합리화 시켰다. 기득권자들이 자기 반성(성찰)을 거부하는 탐욕의 기재가 된 것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쿠테타 세력을 포함해서 보수 정권이 60여년을 통치했고 그 엄혹한 분단체제 아래서도 진보 정권이 15년을 통치했다. 문제는 윤석열 정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이다. 분명히 보수 진영의 후보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보수 정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보수 정권하에서 훈련받은 보수 정치인인가? 라고 물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정치인이 아닌 검사였다. 검사 출신 정치인이란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검사였을 뿐이다. 그가 검사로서 자질이 있는 검사였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전혀 정치적 훈련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실력이 어찌하든 정치는 정치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진실이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돌팔이 의사에게 자기 몸을 맡기는 사람은 없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정당에서 훈련 받은 사람이라야 정치에 입문할 수 있고 국민은 개인의 인물됨과 정당의 정권 담당 능력을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하는 것이 마땅한 상식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이재명의 등장으로 인해 잔뜩 겁을 먹은 기득권 계층이 집단적으로 윤석열이라는 신기루에 속은 것이다. 집단적 환각상태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무감각이라고는 일푼어치도 없는 자가 최고 권력을 틀어 잡고 사회 각 분야의 주요 정책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악의 구조화를 성취했으니 그 폐단을 어찌 형언할 수 있겠는가?

구조악이 자행한 폐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남북 사이에 힘써 성취해 온 평화적 기반을 붕괴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붕괴이다. 남북의 평화 기운이 붕괴된 이유가 남한 때문인가? 북한 때문인가? 하는 논쟁은 참으로 안타깝고 유치한 역사적 퇴행이다. 지금이 1950년인가? 지금이 1960년인가? 2000년대 들어와서 남북한의 국력 차이는 줄잡아 50:1 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 어마어마한 국력 차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의 평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적 쾌거였다. 그런데 지금 그 평화의 기초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몇 년을 지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불안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남과 북의 8,000만 겨레가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을 누르고 평화의 기운이 솟아나게 하며 마침내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내는 것은 우리시대 절체절명의 사명이다. 북한과의 협력을 퍼주기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 땅의 전쟁 방지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냐고 물어야 한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을 합의한 박정희 대통령,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평화 정착의 기틀을 조성한 노태우 대통령,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천명한 김대중 대통령, 그들이 빨갱이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퇴행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퇴행은 남북간 조성된 평화적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면 다음은 전쟁뿐이다. 온 힘을 다해 윤석열 정권의 평화 정책 퇴보를 막아야 한다. 윤정권의 퇴보가 역사의 퇴보가 돼서는 안 된다.

다행히 지난 총선은 윤석열 정권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후 한 달여 동안의 정권 행태를 보면 퇴행이 멈출 것인가? 심히 걱정스럽다. 역사의 대격변 속에서 한국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은 끄덕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깝다. 남북의 갈등은 남남갈등의 극복으로부터! 이것이 평통연대의 정체성임에 틀림없다. 평화를 노래하는 자의 언어가 너무 날카로운 것은 스스로의 걱정이다. 그러나 평화의 기반을 흔드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엄중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의 기초요 역사의 상식이다. 정권의 퇴행이 역사의 퇴보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정신차려 힘을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