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전쟁 위기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은 언제나 국내외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우리는 전후 70년 동안 평화를 누리다 보니 한반도를 전쟁 위험 지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전쟁 위기감으로부터의 자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전쟁 위기가 근본적으로 감소된 상황에서 전쟁 공포로부터 자유 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위기 요인이 상존하거나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데 우리는 전쟁하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일이다. 철부지들이 누리는 허구일 뿐이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국들의 정세가 전쟁 발발을 향해 급발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남과 북, 다시 말하면 한반도 내부의 상황이 훨씬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제는 남한 정부에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남북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남북 긴장 관계를 논할 때 응당 남과 북을 동시에 비판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는 남과 북이 동시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비론은 필연이다. 그러나 더 솔직히 생각하면 양비론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언제 남과 북이 형제국처럼 서로를 믿고 지낸 적이 있었던가? 언제 남과 북이 상호 군비 축소 문제로 무릎을 맞대었던가? 긴장은 항존했고 필요악이었다.
적대적 긴장 관계는 적대적 평화 공존과 동의어였다. 그래서 남과 북은 각각 유엔에 가입된 독립 국가이면서도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임을 서로가 인정했다. 오래전부터 북한은 경제적 위기를 앓고 있었지만, 용케도 그 위기를 극복해 왔다. 전쟁 위기를 논할 만한 내부적 위기는 도래하지 않았으니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으로부터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위기의 조짐은 남한에서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그 태생부터 한반도 위기의 근원이었다. 선제공격, 원점 타격, 천배 보복 등 북한을 자극하는 말이 대통령, 국방부 장관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졌다.
북한도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더 세게 나왔다. 예컨대 9.19 평화협정의 일부를 먼저 무효화시킨 것은 윤석열 정부였다. 그러자 북한은 일부가 아니라 전면 무효화를 선언했다. 한 방을 날리니 열로 보복한 것이다. 평화 유지라는 절대 기준으로 보면 한 방 날린 놈보다 열 배의 공격성을 보인 자가 더 나쁜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 제공은 윤석열 정권이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진실이다.
한반도 위기론이 매우 실제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 3월은 한미연합훈련이 계획되어 있고, 서해안의 꽃게잡이와 대북 풍선 날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남쪽이 연합훈련을 포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어부들이 꽃게잡이를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북한이 원점 타격을 공언하고 있는 풍선 날리기도 확실히 재개될 것이다. 도처에 전쟁 위기가 감돌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No War를 소리 높이 외쳐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부활절까지 사순절 기간(2.24-3.30) 동안 비상한 마음으로 새벽 제단을 쌓아야 한다. 총선이 불리해지는 것을 초조해하는 세력이 국지전을 방기할까? 노심초사 감시해야만 한다. 국회는 국방장관의 헛소리에 대해 탄핵권을 발동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북한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 어느 쪽이 더 선한가? 어느 쪽이 더 센가?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고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이 땅에서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잃을 것도 없다.> 이것이 북한의 배짱이다. 북한을 무서워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남과 북이 공존,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지고지선임을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각성해야 한다.
거짓 평안이 아니라 진정한 평강을 찾아 국민들이 하나 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는 절체절명의 절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안인가, 평안인가? /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한반도의 전쟁 위기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은 언제나 국내외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우리는 전후 70년 동안 평화를 누리다 보니 한반도를 전쟁 위험 지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전쟁 위기감으로부터의 자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전쟁 위기가 근본적으로 감소된 상황에서 전쟁 공포로부터 자유 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위기 요인이 상존하거나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데 우리는 전쟁하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일이다. 철부지들이 누리는 허구일 뿐이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국들의 정세가 전쟁 발발을 향해 급발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남과 북, 다시 말하면 한반도 내부의 상황이 훨씬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제는 남한 정부에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남북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남북 긴장 관계를 논할 때 응당 남과 북을 동시에 비판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는 남과 북이 동시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비론은 필연이다. 그러나 더 솔직히 생각하면 양비론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언제 남과 북이 형제국처럼 서로를 믿고 지낸 적이 있었던가? 언제 남과 북이 상호 군비 축소 문제로 무릎을 맞대었던가? 긴장은 항존했고 필요악이었다.
적대적 긴장 관계는 적대적 평화 공존과 동의어였다. 그래서 남과 북은 각각 유엔에 가입된 독립 국가이면서도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임을 서로가 인정했다. 오래전부터 북한은 경제적 위기를 앓고 있었지만, 용케도 그 위기를 극복해 왔다. 전쟁 위기를 논할 만한 내부적 위기는 도래하지 않았으니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으로부터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위기의 조짐은 남한에서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그 태생부터 한반도 위기의 근원이었다. 선제공격, 원점 타격, 천배 보복 등 북한을 자극하는 말이 대통령, 국방부 장관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졌다.
북한도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더 세게 나왔다. 예컨대 9.19 평화협정의 일부를 먼저 무효화시킨 것은 윤석열 정부였다. 그러자 북한은 일부가 아니라 전면 무효화를 선언했다. 한 방을 날리니 열로 보복한 것이다. 평화 유지라는 절대 기준으로 보면 한 방 날린 놈보다 열 배의 공격성을 보인 자가 더 나쁜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 제공은 윤석열 정권이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진실이다.
한반도 위기론이 매우 실제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 3월은 한미연합훈련이 계획되어 있고, 서해안의 꽃게잡이와 대북 풍선 날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남쪽이 연합훈련을 포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어부들이 꽃게잡이를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북한이 원점 타격을 공언하고 있는 풍선 날리기도 확실히 재개될 것이다. 도처에 전쟁 위기가 감돌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No War를 소리 높이 외쳐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부활절까지 사순절 기간(2.24-3.30) 동안 비상한 마음으로 새벽 제단을 쌓아야 한다. 총선이 불리해지는 것을 초조해하는 세력이 국지전을 방기할까? 노심초사 감시해야만 한다. 국회는 국방장관의 헛소리에 대해 탄핵권을 발동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북한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 어느 쪽이 더 선한가? 어느 쪽이 더 센가?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고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이 땅에서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잃을 것도 없다.> 이것이 북한의 배짱이다. 북한을 무서워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남과 북이 공존,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지고지선임을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각성해야 한다.
거짓 평안이 아니라 진정한 평강을 찾아 국민들이 하나 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는 절체절명의 절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안인가, 평안인가? /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