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체제와 남북연합 (23.12.21)

우리 역사에서 단군왕검의 삼부인(三符印)과 홍익인간(弘益人間)사랑을 담은 단군역사는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일제의 부정과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채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조선과 삼한시대의 장대한 역사와 문화는 제대로 우리에게 전수되지 못했고 몇몇 작은 역사 기록과 선각자들의 저술과 전승으로 남아있으며 근래 새로운 관심과 운동으로 우리 역사의 새로운 국면과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역사의 거봉인 최치원(崔致遠)의 심원하고 높은 사상과 민족정신은 유불선을 아우르는 풍류도(風流道)를 주창하고 천부경(天符經)을 전수하는 중대한 업적을 후대에 남겼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의 지혜와 경제 및 전략의 경쟁으로 우리 민족은 정치, 경제 및 과학에 큰 발전과 진보를 이룩했고 통일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성취하게 되었다. 물론 북쪽의 발해도 우리 민족국가로 소위 남북조 시대를 형성하며 동아시아의 대국, 큰 민족, 세계사의 중추국으로 우뚝 서 있었다. 후삼국의 경쟁과 갈등에서 큰 비전과 포용력과 지략의 왕건(王建)과 참모들의 용기로 고려(高麗)를 열게 된다. 황제국(皇帝國) 고려는 찬란한 문화와 역사로 세계국과 교역하며 고려(KOREA)로서 인쇄술과 청자, 불교문화, 문학과 과학의 위대한 문화와 역사를 꽃피워 왔다. 고려 오백 년의 기운이 쇠할 때 이성계(李成桂) 등의 신진세력이 조선을 개국하고 2백 년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큰 전쟁과 재앙으로 우리 민족은 위기를 맞았지만, 백성들의 의병참여와 하나 된 노력으로 그리고 깨인 선각의 소수 지도자들에 의해 누란(累卵)의 위기를 극복하여 나라와 국민을 보호할 수 있었다. 조선 말기와 개화기에 붕당과 가문의 이익을 내세운 정치로 피폐해진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 동학사상으로 깨인 백성들의 동학혁명으로 봉기했으나, 지배층의 무능과 일제의 야욕으로 수많은 동학인민들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었다. 가문과 붕당의 이익을 백성과 나라보다 우선시하던 소수 지배층에 의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일제의 잔혹한 억압과 압제에 항거하는 우리 민족의 웅대한 왜침인 3.1운동으로 다시 한반도와 세계에 그 찬연한 소리와 동방의 빛으로 세계사에 우뚝 서게 되었다. 해방과 정부 수립 그리고 다시 동족상잔의 6.25를 거치고 우리는 남북으로 나뉘어 70여 년을 갈등하고 총부리를 마주하고 전쟁 일보 직전에 서 있다.

오랜 남북대치의 긴장을 일거에 새롭게 한 것은 7.4 남북공동성명이다. 핵심 가치는 자주 평화 민족이다. 이어 5공화국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82.1.22)도 민족 자결, 민주적 절차, 평화적 방법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9.11)과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94.8.15)은 공히 자주, 평화, 민주를 핵심 가치로 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6.15 선언과 10.4 선언은 남북 공존과 남북평화 그리고 남북통일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박근헤 정부의 ‘통일대박’도 남북긴장을 완화하며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와서 한반도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남북대화, 북미대화, 남북미 대화 등 실로 속도감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길을 달렸다. 남북정상이 백두산에 오르고 천지 물과 한라산 백록담 물이 합수(合水)되는 감격과 아리랑이 백두산과 천지, 한반도와 전 세계에 퍼지는 기적을 우리는 체험했다.

세계 어느 민족국가도 한반도의 통일을 흔쾌히 원하지 않고 있다.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한 민족의 70여 년 분단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눈물엔 관심 없다. 문제는 현재 우리 가운데 있다. 세부 실천 방법과 시기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수 있었으나 지난 역대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정부들의 일관된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한다. 현실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에서 남북정책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우선 학계에서의 논의를 살펴보면 한반도를 분단체제로 보는가에 대한 견해차다. 분단체제를 제안한 백낙청(白樂晴) 교수는 가장 크고 광범위한 영향력의 체제로 세계체제로 보고 한반도를 남한체제와 북한체제로 보는 시각이다. 즉 한반도의 문제를 남한이나 북한만 떼어내서 독자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 보다, 남한, 북한 및 세계체제를 동시적으로 연계된 체제로 이해하고 문제를 접근, 해결하려는 시도와 방법들이 타당하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세계에서 미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가 한반도에 직간접 연결되어 현 남북대결 등 문제에 관여, 견제, 지원 등의 입장을 갖는 점을 이해, 분석,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남북한은 기득권층과 다수 대중이 상이한 입장과 처지에 있어 왔으며 집권층이 자기 이익을 위해 남북의 분단을 이용하거나 고착화 해온 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음을 강조한다. 7.4 남북공동성명이후 북은 김정일로 권력승계 등 가족 정권을 확립했고, 남은 10월 유신출범으로 박정희 영구집권을 제도화했다. 이후 많은 사건과 정책들을 통해 기득권층이 남북분단을 이용해 자기의 이익 증대, 기득권 보호를 지향했다. 이런 현상을 이종석 통일부 전 장관은 적대적 상호의존관계, 박명림 교수는 대쌍 관계동학(interface dynamics)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안병직(安秉直)교수는 백낙청 교수의 이런 주장에 반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백 교수는 이 세 가지 체제가 ‘다원방정식’을 이루고 했다고 했어요. 아마 ‘연립방정식’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Y(분단체제)=X(남한체제)+Z(북한체제)+α(세계체제)가 될 것인데, 이것이 성립하려면 X와 Z, α라는 변수들이 각각 수량화가 돼야 하지만 여러 모순이나 체제는 이것이 불가능하므로 자의(恣意)에 의한 수량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라 말한다. 안교수는 백교수의 주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경제학의 회귀 방정식 형식으로 설명하는 등 다소 무리한 접근을 시도했다고 보인다. 정치학계에서 남북한의 우선 과제로 최장집 교수는 “신질서에서 이해되는 평화 공존은 통일의 가능성을 제거해버리는 남북관계”라면서 “미래의 남북관계는 통일된 민족단일국가가 아니며, 어떤 것이 될지는 열려 있다”면서 “그것을 열어 놓고 평화 공존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관리하느냐에 집중하지 않으면 평화 공존도 실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백낙청 교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함께 진행되는 것이며 '양국체제론' 또는 '한반도 2국가론'은 "주창자들의 의도와 별도로 분단체제 기득권 수호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십상이며....당장에 비핵화를 실현할 방책도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남북한에서 정상과 당국자 간에 합의된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는 평화공존, 평화교류 그리고 남북연합이라 할 수 있다. 남북연합은 남북이 평화공존과 교류를 유지하며 더 진전된 모습으로서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남북군사협정, 다양한 경제, 사회문화 교류 특히 스포츠 교류 등을 포괄하는 신축적(flexible)인 접근과 이해를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등장으로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양상이 심화되고 선제타격 가능 등 힘에 의한 대결과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힘과 힘이 부딪히고 강성 언어와 갈등이 깊어지면 결국 긴장과 전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많은 문제와 갈등 속에서도 우리는 선진들의 지혜와 경험을 토대로 강고한 분단체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한걸음씩 남북연합을 통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나뉘어 있었고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할 당위성이 커지고 있다. 지혜와 힘을 모으고 이 땅의 평화와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겔 37:22)


김홍섭/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평화통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