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의 카이로스 (23.09.21)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아침, 저녁의 하루가 생기고 일 년이 지나간다. 지구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어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달의 인력으로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로 이어지며 해류와 조류가 일어나며 해수면 위엔 파도가 인다. 고대부터 인류를 이런 자연변화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시간을 정해 운영해 오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시간을 인위적 기준으로 나누어 물리적, 객관적 기준으로 정해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신이 정한 특정한 시간 또는 '기회'와 같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으로 카이로스(Kairos)을 이해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kairos)는 제우스의 막내아들로 티탄 12신중 어머니 가이아를 도와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다.

우리는 지금 최고의 긴장과 갈등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한 때 남북이 교류와 협력으로 서로 오가며 군사분계선이 아이들 장난감처럼 부드럽고 아무 일없이 오가며 미국 대통령도 넘나들던 때가 얼마 아닌 일이었다. 윤정부 등장으로 선제 타격과 버르장머리 등 폭력적 언어가 오가며, 미국이 주도한 대중국 견제 위한 쿼드(Quad), 파이브 아이(5Eyes), 인태(India-Pacific)전략 등에 이어 한,미,일 동맹벨트와 북,중,러의 동맹벨트의 재건으로 세계는 전운이 감도는 듯한 제2 냉전구도가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연대기적 시간인 크로노스와 달리 역사적이고 사건적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담긴 카이로스의 시간을 성찰하게 된다. 예수님의 초림(初臨)과 공생애의 사역은 로마라는 거대한 구조와 힘이라는 거대 절벽에 맞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사랑과 용서로 어찌 보면 너무 나약하게 보였을지 모르는 전혀 다른 차원의 체계와 담론으로 세계를 전도시키신 것이다. 교황, 신부 등 중세 교회 중심의 강고한 천년 종교체제에 대해 수없이 많은 천재들과 변혁자들의 변화 왜침에도 침묵하시는 것 같던 암흑의 시대가 한 젊은 수도사의 결단과 동조하는 성주와 시민의 힘으로 종교개혁(Reformation)의 큰 장이 열려 카이로스의 역사는 변화되어왔다. 물론 그 이전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1329-1348)와 얀 후쓰 (John Huss, 1370?-1415) 등 피로 사라진 선각자들의 광야의 왜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70여년의 짧지 않는 긴 시간을 남북이 긴장과 갈등, 교류와 협력의 양날의 칼 같은 형국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노려보고 손을 내밀어 어깨를 나누기도 하고, 총포에 불을 쏟아내기도 하던 시간들도 있었다. AD 70년 디도(Titus Flavius Vespasianus, 39~81)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흩어져 세계를 유랑하게 되어 약 2천년을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없어졌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행 1:7절에) 같이 “때와 시기”가 되어 이스라엘이 회복된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이 종교적 신학적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평가된다.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이 재건된 것이다. 2천년 유랑하던 이스라엘의 재건은 많은 선각자들과 협력자들의 연대와 준비 없이 불가능했다.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울 것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스트(Zionist)총회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결의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시오니스트 총회장인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은 50년 후에 이스라엘이 건국될 것을 예언하였다. 그는 헝가리 출생 유대인으로 잡지사 기자였으나, 1894년 소위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간첩사건 취재 때 간첩 혐의가 전혀 없는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간첩이라는 판결을 받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2년간 방안에서 유대인 스스로를 보호할 국가건설이 민족을 구할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 “유대인의 국가(The Jewish State)”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이를 유대인 유력자들에게 보냈으나 호응 대신 비난을 받아 실망감에 빠졌다. 다만 비엔나 주재 영국대사관 주재 개신교 헤흘러(William H. Hechler,1845~1931) 목사는 그 책을 읽고 크게 감동 받아 헤르츨을 만나 유대국가 건설을 위한 시온주의 운동이 성경적이라고 적극 지지하며 많은 협력자들을 연결해 주었다. 1차 대전을 통해 영국이 중동지역에 지배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발포어 선언(1917년)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꿈이 구체화되었다. 1930년대 나치즘의 박해로 유럽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급증했으며 2차 대전 중의 대학살로 국제적 동정을 모음에 따라 1947년 이스라엘 건국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오니즘 운동은 여러 선각자들에 의해 계승, 확장되었다. 옥수수를 사용해 아세톤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해 영국이 전쟁에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바이츠만(히브리어: חיים עזריאל ויצמן, 아랍어: حاييم وايزمان, 영어: Chaim Azriel Weizmann, 1874~1952)에게 영국 정부는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하기로 하지만 그는 수여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이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가서 살게 해 줄 것을 요구하여 이스라엘 재건에 큰 힘을 더했다. 초대 총리 벤구리온(히브리어: דָּוִד בֶּן-גּוּרִיּוֹן, 영어: David Ben-Gurion, 1886~1973)도 열정적으로 시오니즘을 지지해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벤-쯔비 (Yitzhak Ben-Zvi: 2대 대통령), 쉬프린작 (Yosef Shprinzak: 초대 국회의장)등 지도자들도 1920년대부터 각종 유대민족의 자치조직들을 결성해 국가 재건에 힘을 보탰다. 이스라엘의 재건은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고 온 민족이 하나 되어 조국 재건과 독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이룩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협력하고 하나 된 다수 국민들의 기도와 열정과 지혜와 피흘리기 까지의 노력이 없이는 이룩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독일의 통일도 동독을 향한 서독 기독교계의 기도와 헌신 그리고 소통과 지원 등 거의 끝없는 협력과 민족애에 근거한다. 특히 니콜라이 교회 등 기독교계의 기도와 헌신, 집권 정당의 변화에도 무관하게 일관된 동방정책(Ostpolitik)의 지속이 뿌리가 되고 이런 독일 민중의 희망을 무시할 수 없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인접국들의 이해와 인류애로 독일 통일의 카이로스가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또 다른 동맹이 구축한 제2의 냉전구도와 전쟁직전의 긴장과 우려가 점고되는 한반도, 동북아의 정치, 군사 환경에 처해 있다. 이러한 난관의 많은 부분은 새 윤정부의 전략적 선택과 미국, 일본의 자국이기주의 전략에 준거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전 문재인 정부와 미 트럼프 정부가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수차례 이어가며 한반도 평화와 더 나아가 통일로의 큰 걸음을 내 디딘지 얼마 되지 않아, 윤정부와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오히려 긴장과 전쟁의 위기를 이 땅에 점고시키고 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란 진리이나 편안한 자세를 넘어 우리는 한 시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평화통일의 그 카이로스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학문적으로 언어, 과학 등 전 분야에 튼실하고 확실한 준비와 연구, 대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성경말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과 같이 하나님의 때는 알 수 없으나 지혜로운 처녀 같이 준비하고 깨어있는 자에게는 그 카이로스의 때가 오고, 그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는 믿는다.


김홍섭 /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평화통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