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엊그제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국내 시민·노동·야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비판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한 것이다.
지난해 광복 77주년 경축사에서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했고, 올해 3.1운동 104주년 기념사에서는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라고 한 바 있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파트너”라고 말하고 있는 동안 일본의 국회의원들 67명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공물을 보내 애도를 표했고, 전·현직 관료들은 직접 참배에 나섰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곳엔 태평양전쟁 사망자 213만 3,915명, 중일전쟁 19만 1,250명, 러일전쟁 8만 8,429명, 만주침략 1만 7,176명, 청일전쟁 1만 3,619명 등 264만 6,584명의 전사가가 신(神)으로 모셔져 있어서다. 이들 중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조선과 만주침략의 정당성 그리고 독도 정벌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 그리고 그의 충실한 제자였던 이토 히로부미, 기시 노부스케(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도조 히데키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자신들의 과거 침략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파트너의 말 뜻은 동반자다. 뜻을 같이 행하거나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본은 제국으로서 우리를 식민지로 삼은 가해자였고, 한국은 그 피해자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반자가 되려면 가해자가 사과하고, 피해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피해자로서의 상처와 고통이 어느 정도 치유되었을 때라야 가능하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가해자가 2차, 3차, 4차 가해를 끝없이 가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파트너고 동반자란 말인가.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파트너가 될 뻔한 때가 있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했을 때다. 두 정상은 선언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간 대화 노력 강화는 물론 정치·안전보장·경제 및 인적·문화교류, 각료급 회의, 무역·투자·산업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 및 노·사·정 교류, 연구원·교사·언론인·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의 국민 및 지역간 교류, 온실가스 배출 제한·개발도상국 원조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과 일본은 폭넓게 한일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을 다짐했고, 이 때문에 양국의 문화 교류가 급물살을 탔고, 일본에서는 한류 바람이 불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파트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파트너십은 2010년부터 일본이 극우화로 치달으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파트너십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언은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새겨넣었다.
그러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데도 우리 대통령은 일본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조차 의아해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심지어 “대통령이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자조섞인 탄식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일방적인 언행은 양국의 화해는커녕 한일간의 관계를 더 서먹하게 만들고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이번 주에 열리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역사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역사적인 논의’는 다름 아닌 한미일이 준군사동맹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은 물론, 대만이나 중동,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전세계에서 벌이는 전쟁에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의 지휘는 물론 일본의 하부 구조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를 침략하고 식민지 삼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위안부로, 강제노동으로 끌고갔던 과거에 대해 반성은커녕 오히려 “조선 사람들이 원한 것”, “조선을 위한 것”이라는 망발을 일삼고 있는 일본과, 해방 직후 남북분단의 직접적 원인이 된 조선의 식민지화, 그리고 분단으로 인한 한국전쟁, 그로 인한 또 다시 분단과 군사독재의 질곡으로 이용했던 과거에 대해 반성은커녕 덮어버리고 책임전가 해버리는 그리고 호시탐탐 한반도 평화에 어깃장을 놓는 일본과 어떻게 파트너가 되고, 동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바람처럼 일본이 우리의 파트너가 되는 데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을 뿐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다. 그것은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노역 생존자들의 마지막 바람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일간의 진정한 화해와 교류를 바라는 우리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일본이 우리의 파트너가 되려면 / 김성원 평화통일연대 동북아평화교육원장
대통령이 엊그제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국내 시민·노동·야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비판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한 것이다.
지난해 광복 77주년 경축사에서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했고, 올해 3.1운동 104주년 기념사에서는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라고 한 바 있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파트너”라고 말하고 있는 동안 일본의 국회의원들 67명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공물을 보내 애도를 표했고, 전·현직 관료들은 직접 참배에 나섰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곳엔 태평양전쟁 사망자 213만 3,915명, 중일전쟁 19만 1,250명, 러일전쟁 8만 8,429명, 만주침략 1만 7,176명, 청일전쟁 1만 3,619명 등 264만 6,584명의 전사가가 신(神)으로 모셔져 있어서다. 이들 중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조선과 만주침략의 정당성 그리고 독도 정벌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 그리고 그의 충실한 제자였던 이토 히로부미, 기시 노부스케(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도조 히데키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자신들의 과거 침략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파트너의 말 뜻은 동반자다. 뜻을 같이 행하거나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본은 제국으로서 우리를 식민지로 삼은 가해자였고, 한국은 그 피해자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반자가 되려면 가해자가 사과하고, 피해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피해자로서의 상처와 고통이 어느 정도 치유되었을 때라야 가능하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가해자가 2차, 3차, 4차 가해를 끝없이 가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파트너고 동반자란 말인가.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파트너가 될 뻔한 때가 있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했을 때다. 두 정상은 선언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간 대화 노력 강화는 물론 정치·안전보장·경제 및 인적·문화교류, 각료급 회의, 무역·투자·산업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 및 노·사·정 교류, 연구원·교사·언론인·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의 국민 및 지역간 교류, 온실가스 배출 제한·개발도상국 원조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과 일본은 폭넓게 한일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을 다짐했고, 이 때문에 양국의 문화 교류가 급물살을 탔고, 일본에서는 한류 바람이 불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파트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파트너십은 2010년부터 일본이 극우화로 치달으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파트너십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언은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새겨넣었다.
그러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데도 우리 대통령은 일본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조차 의아해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심지어 “대통령이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자조섞인 탄식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일방적인 언행은 양국의 화해는커녕 한일간의 관계를 더 서먹하게 만들고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이번 주에 열리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역사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역사적인 논의’는 다름 아닌 한미일이 준군사동맹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은 물론, 대만이나 중동,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전세계에서 벌이는 전쟁에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의 지휘는 물론 일본의 하부 구조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를 침략하고 식민지 삼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위안부로, 강제노동으로 끌고갔던 과거에 대해 반성은커녕 오히려 “조선 사람들이 원한 것”, “조선을 위한 것”이라는 망발을 일삼고 있는 일본과, 해방 직후 남북분단의 직접적 원인이 된 조선의 식민지화, 그리고 분단으로 인한 한국전쟁, 그로 인한 또 다시 분단과 군사독재의 질곡으로 이용했던 과거에 대해 반성은커녕 덮어버리고 책임전가 해버리는 그리고 호시탐탐 한반도 평화에 어깃장을 놓는 일본과 어떻게 파트너가 되고, 동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바람처럼 일본이 우리의 파트너가 되는 데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을 뿐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다. 그것은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노역 생존자들의 마지막 바람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일간의 진정한 화해와 교류를 바라는 우리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일본이 우리의 파트너가 되려면 / 김성원 평화통일연대 동북아평화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