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복음 통일’에 실체적 내용을 담아보자 (23.11.09)

얼마 전 한 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음 통일’에 대한 단상을 올린 것이 눈에 띄어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복음 통일’을 주장할 때, 그것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화통일’인지 ‘전쟁불사’인지 모르겠다고 했고, 압박이나 충격을 가해 북한의 붕괴를 도모하자는 것인지 그냥 기다리자는 것인지 아니면 평화 공존의 길을 택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흡수통일하자는 것인지 새로운 체제를 만들자는 것인지, 국제관계 속에서 영세 중립국을 추구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인의 단상을 읽으며 유사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적지 않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위기상황이나 남북통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언급할 때면, 끝에 가서는 복음으로 통일하자고 주장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화 야욕으로 가득 차 있다. 빨갱이들은 종교를 억압하고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생필품을 지원하고 금강산을 관광하고 개성공단을 운영하고 했던 진보정권의 햇볕정책은 결국 북한이 핵을 만드는 것을 도왔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으로 통일하는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대충 이런 식의 논조가운데 갑자기 틔어나오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볼 때 ‘복음 통일’이라는 말은 한반도의 주요 문제인 분단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통일의 과제를 간과할 수 없는데, 기독교 인사들이 그나마 자신도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면피용의 외교적 언사 정도로 여겨진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젖어 자본주의에로의 흡수통일을 당연시하고 있고, 소위 ‘빨갱이들’에 대해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살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남북통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이루실 것이니 우리가 굳이 할 일은 없는 것처럼 사고한다. 그들은 우리의 민족모순이나 우리 사회의 계급모순, 또는 기독교와 세상 사이의 상호 교감의 과제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처신한다.

그러나 필자는 ‘복음 통일’이야말로 우리 기독교인이 경청하고 추구해야 할 과제이고, 정작 복음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도전할 수 있는 것이 된다고 보고 있다.

첫째로, ‘복음 통일’은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이 왜 문제인지 직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남과 북이 이데올로기로, 동과 서가 지역 연고주의로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에 있다. 이남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빈부 격차로, 이북은 평양 주민과 비평양 주민의 특권 수혜 여부로 양분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남북 모두가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내국인과 외국인 등 다방면으로 분열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복음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막힌 담을 허물고, 화해를 일구어 하나가 되게 하신 분이 아니던가. ‘복음 통일’은 한반도와 우리 사회의 적대적이고, 배타적이고, 경쟁적이고, 야만적이고, 균열적인 상태를 해소하고, 더불어 살기 위한 관심의 첫 출발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로, ‘복음 통일’은 통일의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그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신 예수의 말씀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우리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원수라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마 5:44)은 한국전쟁으로 각인된 남북 간의 원수 관계와 트라우마를 청산할 것을 도전한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말씀(마 7:12)은 상대에게 신뢰할 만한 행위를 요구하기 전에 신뢰를 줄 수 있는 행위를 먼저 실행할 것을 요구한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 10:37)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상대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살만한 환경을 제공해줄 것을 지시한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예수의 말씀(요 15:13)은 상호 교류와 공존을 지나 상대를 위한 자기희생의 길을 제안한다. 우리는 복음으로 수용하고 따라야 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한반도 통일과 사회통합의 방식을 규정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복음 통일’은 통일된 나라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전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나라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수용하는 순간 우리 삶의 자리에 즉시로 임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는 사랑으로 정의를 세워 모두가 평화를 누리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편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법 앞에서 평등하고,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풍성한 생명을 더불어 누리고, 해를 주고 해를 받는 관계가 해소된 나라이다. 또한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롬 12:3)을 우선으로 추구하며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으로 통일된 우리나라가 남북 주민들에게 희망일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 시민 모두에게도 희망을 주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은 실체가 없는 ‘복음 통일’을 의미 없이 운운하는 것을 중지하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전하신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에 비추어서 통일의 내실있는 실체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6-17)


정종훈 / 연세대 교수, 평화통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