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참혹한 전쟁 갈등이 세계인들을 불안과 공포로 휘몰아치고 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끝 모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붓는 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전쟁이다. 작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팔레스타인의 한 지역인 가자지구의 극단적 통치 세력 <하마스>가 일으킨 대이스라엘 “침략” 전쟁이다. 침략의 주체는 전자의 경우 초강대국 러시아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비천한 약자인 하마스이다. 이 두 경우 침략의 주체는 서로 다르나 결과로써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부류의 전쟁이든 반드시 생겨나는 공통의 현상이다. 전쟁의 일차적 희생자는 군인이지만 최악의 부차적 희생자는 민간인들이고, 특히 힘없고 순박한 노령자, 부녀자, 어린이,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들 집단이라는 점이다.
2006년 유엔 감시하에 실시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LO) 수립을 위한 총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 Bank)는 정치적으로 중도 온건 세력인 ‘파타’(Fatah)가 집권하며 이스라엘과의 평화적 공존을 이루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이집트와 인접한 남부의 해안가 가자(Gaza) 지역은 극단 강경파인 ‘하마스’(Hamas)가 득표에서 신승으로 집권한 이후 줄곧 정교일치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며 극단의 이슬람 일국 주의를 내세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반도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 유대인 전부를 추방하고 명실상부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목표를 향해 진력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자체 내의 이런 민족 내적 갈등과 노선대결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주변 아랍 국가들의 입장도 이슬람 종파별 갈등과 동시에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한 행태를 보인다. 전쟁의 전후 결과는 항상 이러하다.
그런데 소위 하마스 침략에 맞서는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가? 군사적으로 승승장구하며 강자로 군림하는 이스라엘의 오늘 형편은 녹녹하지 않다. 네타냐후 극우 연립정부는 유대인 우월주의에다가 유대교 근본주의자 정당까지 아우르면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자치권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고, 내치로는 사법부 권한 축소와 집권 세력의 독점적 기득권 강화 시도가 엄청난 정치적 사회 내적 저항과 반발에 직면하면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는 보도이다. 이 틈새를 하마스가 노렸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번 중동 전쟁의 양상은 과거와 달리 ‘극우 유대 우월주의’와 ‘극우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강대강의 처참한 대결에서 양측의 사회적 약자들, 소위 ‘양민 집단’이 먼저 압살당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이념이며 대결이며 전쟁인가? 결국 승자 없는 패자 양산의 무모한 살상 전쟁이 아니겠는가? 인명도, 문화도, 경제도, 안보도 희생뿐인 영광에 내몰아야 하나?
한반도로 눈을 돌려 본다. 70년이라는 세월을 적대적 분단 속에서 살아왔다. 쌍방 간에 때로는 가냘픈 햇살이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강추위 속에서 얼기도 하며 살아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 전쟁은 해법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의 실체이다. 우리도 이미 6.25 전쟁으로 이 교훈의 진실은 알고 있다. 그러기에 전쟁을 부추기거나 정당화하려는 어떤 이념적 안보적 극단주의도 온당하지 않다. 최빈국 북쪽과 선진국 남쪽의 내부도 서로 다른 극단주의와 증오의 대결로 치달으려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서로를 악마화하는 여력의 방향을 바꾸어 서로의 다름을 전제로 삶의 가치 실현을 위한“상생적” 경쟁에 임하는 길을 닦자. 뜻을 세우면 길이 생긴다. 길 닦기에 나서자.
박종화 / 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참혹한 전쟁 갈등이 세계인들을 불안과 공포로 휘몰아치고 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끝 모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붓는 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전쟁이다. 작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팔레스타인의 한 지역인 가자지구의 극단적 통치 세력 <하마스>가 일으킨 대이스라엘 “침략” 전쟁이다. 침략의 주체는 전자의 경우 초강대국 러시아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비천한 약자인 하마스이다. 이 두 경우 침략의 주체는 서로 다르나 결과로써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부류의 전쟁이든 반드시 생겨나는 공통의 현상이다. 전쟁의 일차적 희생자는 군인이지만 최악의 부차적 희생자는 민간인들이고, 특히 힘없고 순박한 노령자, 부녀자, 어린이,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들 집단이라는 점이다.
2006년 유엔 감시하에 실시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LO) 수립을 위한 총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 Bank)는 정치적으로 중도 온건 세력인 ‘파타’(Fatah)가 집권하며 이스라엘과의 평화적 공존을 이루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이집트와 인접한 남부의 해안가 가자(Gaza) 지역은 극단 강경파인 ‘하마스’(Hamas)가 득표에서 신승으로 집권한 이후 줄곧 정교일치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며 극단의 이슬람 일국 주의를 내세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반도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 유대인 전부를 추방하고 명실상부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목표를 향해 진력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자체 내의 이런 민족 내적 갈등과 노선대결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주변 아랍 국가들의 입장도 이슬람 종파별 갈등과 동시에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한 행태를 보인다. 전쟁의 전후 결과는 항상 이러하다.
그런데 소위 하마스 침략에 맞서는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가? 군사적으로 승승장구하며 강자로 군림하는 이스라엘의 오늘 형편은 녹녹하지 않다. 네타냐후 극우 연립정부는 유대인 우월주의에다가 유대교 근본주의자 정당까지 아우르면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자치권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고, 내치로는 사법부 권한 축소와 집권 세력의 독점적 기득권 강화 시도가 엄청난 정치적 사회 내적 저항과 반발에 직면하면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는 보도이다. 이 틈새를 하마스가 노렸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번 중동 전쟁의 양상은 과거와 달리 ‘극우 유대 우월주의’와 ‘극우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강대강의 처참한 대결에서 양측의 사회적 약자들, 소위 ‘양민 집단’이 먼저 압살당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이념이며 대결이며 전쟁인가? 결국 승자 없는 패자 양산의 무모한 살상 전쟁이 아니겠는가? 인명도, 문화도, 경제도, 안보도 희생뿐인 영광에 내몰아야 하나?
한반도로 눈을 돌려 본다. 70년이라는 세월을 적대적 분단 속에서 살아왔다. 쌍방 간에 때로는 가냘픈 햇살이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강추위 속에서 얼기도 하며 살아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 전쟁은 해법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의 실체이다. 우리도 이미 6.25 전쟁으로 이 교훈의 진실은 알고 있다. 그러기에 전쟁을 부추기거나 정당화하려는 어떤 이념적 안보적 극단주의도 온당하지 않다. 최빈국 북쪽과 선진국 남쪽의 내부도 서로 다른 극단주의와 증오의 대결로 치달으려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서로를 악마화하는 여력의 방향을 바꾸어 서로의 다름을 전제로 삶의 가치 실현을 위한“상생적” 경쟁에 임하는 길을 닦자. 뜻을 세우면 길이 생긴다. 길 닦기에 나서자.
박종화 / 평화통일연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