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만드는 한반도 평화학교(22. 08. 23)

“제주 4.3은 평화, 통일, 인권의 상징입니다.”

약 1시간에 걸친 제주 4.3평화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출구에 보이는 문구입니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얼굴 옆 벽면에 새겨진 이 글귀는 제주도를 다시 보게 합니다. 그저 아름다운 땅, 바람, 돌, 여자가 많은 삼다의 섬으로만 알았던 많은 이들에게 제주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켜 줍니다.

작년에 이어서 이번에도 평화통일연대는 2022 한반도 평화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유학중인 해외 청년 10명, 국내 청년 10명이 참여해 분단의 현장을 둘러보고, 한반도 평화의 강의를 듣고, 모둠활동을 하며 청년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되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2박 3일의 일정 중 가장 먼저 4.3 평화공원을 방문했습니다. 해외 청년이나 국내 청년 중엔 사실 제주도에 가고 싶어서 한반도 평화학교에 지원한 친구도 몇 명 있었습니다.

이들이 4.3평화공원을 둘러보고 하는 말은 비슷합니다. “아름다운 제주에 이런 크나큰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대만 청년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알면 서로 싸울 일이 없어진다. 서로 친하게 된다”고. 중국 청년은 동북아 평화체제가 중국의 강력한 힘 때문에 구조적으로 힘들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뉴스에서는 대만과 중국 사이가 금방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나빠 보이지만 한반도 평화학교에서 만난 대만 청년, 중국 청년 사이에는 전혀 그런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8월 초에 있었던 공동 입학식에는 지난해 참여했던 1기 선배들이 2기 후배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투르크메니스탄 청년은 제주 오름 방문 경험을 들려주며 제주 평화는 곧 한반도 평화, 글로벌 평화의 시작이라며 청년들을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지금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세계정세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최소 30년, 길게는 200년까지 갈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우크라이나가 말해주듯 미중 대결의 격전지는 동중국해, 남중국해 한가운데 놓인 대만 또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 평화는 그만큼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남북관계가 돈독해서 긴장과 대결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 필수인데, 지금의 남북관계, 남북의 내부 상황을 보면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미중 대결의 긴장감이 그대로 남한과 북한, 한반도에 유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상과 원인을 놓고 한국 사회는 언제나 그랬듯이 진보-보수 갈등, 여야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이어갈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과연 평화가 가능할까요? 과연 어디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청년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적은 달라도 사심없이 터놓고 역사를 얘기하고, 전쟁의 원인을 말하고, 평화의 방법을 얘기하는 청년들에게서 평화는 가능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평화를 갈망하듯 평화를 경험한 사람은 더욱 전쟁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학교의 꿈은 해외청년, 국내청년들이 한반도를 넘어 베트남,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곳곳의 역사 현장을 탐방하며 평화를 찾고 평화를 구상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도 한반도의 평화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로 확산되거나 또는 동아시아 평화 체제 속에서 더욱 새롭게, 쉬운 형태로 가능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반도 평화학교에서 평화를 경험한 청년들이 평화를 만들어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김성원/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