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홍]겸손한 사랑, 대담한 지원


          
서독 교회가 동독에 엄청난 액수의 재정 지원을 했던 것을 물질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며, 유물주의적이다. 가난한 자를 위한, 아니 동족을 향한 재정적 도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주님의 사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영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랑의 실천으로 물질을 지원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겸손하게 영적으로 행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확고한 철학과 순수한 지원을 잊지 않았던 서독 교회의 지난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교훈으로 다가온다.
동서독 교회는 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유대관계'를 지혜롭게 유지하기 위해 ‘자문단'과 ‘협의단'을 구성했다. 동서독 교회 각각 15명으로 구성한 자문단은 1969년부터 정기적으로 연간 4회 이상 모임을 가지면서 20년 이상 지속됐는데, 동서독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 간에 필요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다음 모임의 날짜를 정했다. 처음에는 모임이 단지 순수한 ‘형제애적 담화'로 끝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만남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인내하며 모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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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협의단은 1980년부터 동독 교회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는데, 동서독 교회가 공동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업을 보다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했다. 무엇보다 매년 열리는 ‘평화주간’, ‘평화를 위한 공동예배’ 등을 준비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은 공산정권에 교회의 좋은 면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의 순수한 사랑에 공산정권은 감동을 받아 의심을 풀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서독 교회의 동독 재정지원에는 분명한 원칙, 곧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 사랑은 받는 자의 인격이 문제가 아니라, 주는 자의 인격이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첫째, 언제나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닌 명목 있는 지원을 원칙으로 삼았다. 보다 적극적으로 떳떳하게 지원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명목을 찾았다.
둘째, 서로 간 불신을 멀리한 보다 순수한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동독을 향해서는 관용과 다양성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가지면서도 자신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리한 비판의식을 잃지 않았다.
셋째, 지원의 다양성과 대담성이었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금전과 물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공했는데, 의료 활동·사회 봉사활동·농업·임업·교회건축 및 개축·교회 자동차 구입·교회 휴양시설 건축 등에 대담한 지원을 했다(매년 약 3400억 원).
넷째, 서독정부의 적극적인 법적, 재정적 지원이 있었는데, 재정의 상당부분을 ‘내독 관계 예산’으로 책정해 보조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를 앞세운 서독 정부의 동독원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여기서 혹시 이러한 서독교회의 지속적 재정적 지원이 역사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아민 폴체(Amin Volze)는 분석을 내어 놓았다.
1. 동독의 국민경제에 도움을 주었다. 2. 동독의 외화 획득에 도움을 주었다 3. 동독의 물자 조달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다 4. 유대관계가 향상되어 교회가 정치적, 법률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 5. 동독의 교회 단체, 교회 부속병원, 양로원 그리고 기타 기관을 실질적으로 도움으로써 동족의 고통을 완화시켰다. 6. 동독교회가 계속 복음을 전파해 동독인의 삶에 중요한 원리를 제공함으로써 유물론적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 토양을 형성하게 했다. 7. 결국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를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 1월 23일 마지막으로 동독 교회를 위해 서독교회의 5000만 마르크(약 400억 원)의 재정지원이 이뤄졌고, 같은 해 9월 24일 독일 통일 바로 일 주일 전에 이러한 재정 지원 사업은 영광스럽게 종결됐다. 

 

● 본 글은 매우 오래 전(약 15년 전) 쓴 필자의 글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직시하며,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