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이렇게 또 5년 후면, 한반도는 훨씬 위험해진다”(2026. 8. 5)

구교형 목사(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상임대표)


어떤 면에서 보든, 지금 지구촌은 매우 중요한 전환기다. 1990년대 세계 냉전체제가 끝나고, 중국과의 협력 속에서 미국 중심 체제가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든 면에서 미국의 의지와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미국도, 국제사회도 더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다.


언제나 기존의 체계와 구조의 전환기에는 기회는 물론 위험도 훨씬 커진다. 지구촌 전체의 위기를 논외로 한다고 해도, 한반도와 동북아의 위기는 최소한 착각과 헛된 희망 사항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무슨 말인가?


1990년대 시작부터 소련을 비롯해 사회주의 체제가 급작스레 사라지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평화와 협력에 대한 기대를 넘어 그나마 남은 사회주의 국가들조차 다 무너질 것을 기대하며 은근히 여건을 조성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기대는 조선(북한) 붕괴를 통한 체제 흡수와 통일이었다. 더구나 그 무렵의 조선은 절대 권력 김일성 주석이 죽고, 거듭 이어진 자연재해들로 인해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으니, 그런 꿈들은 설득력을 더욱 높였다. 정권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한국이나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전략적 인내’라고 폼이 나게 불렀지만, 요점은 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입장은 달랐다. 그들은 사회주의권 몰락과 잇따른 최고 지도자들(김일성, 김정일)의 죽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도 체제를 지키며,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를 통한 자력갱생의 길을 찾았다. 물론 모든 면에서 압도적 열세에 있는 조선이 위협적인 주변 열강들의 적대적 외압을 뚫고 자력갱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찍부터 자력 생존을 목표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시작했던 조선은 1990년대 이후 그것에 더 큰 힘을 쏟았고, 이를 막으려는 주변국과 줄다리기가 좌초될 때마다 위험을 무기로 조선의 몸값은 점점 더 키웠다.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위험한 적대 구조를 깨고, 공존과 평화 체제로 바꾸려는 가장 최근의 노력이 2018년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 북미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포함해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협상이 절정에서 좌초되자, 조선은 더는 주변국에 허망하게 기대지 않고 자신들만의 길을 가겠다며 일체의 대화를 끊었고, 거침없는 독자적 행동을 이어왔다. 국제적으로는 자주적 핵보유국임을 선언했고, 더 이상 핵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공언했다. 또한 한반도는 남과 북이라는 통일 지향의 두 체제가 아니라, 한국과 조선이라는 두 국가임을 천명하며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임을 덧붙였다. 


겉으로만 보면 모든 협력과 대화의 가능성이 한꺼번에 모두 폐기된 것 같았고, 실제로도 이러한 정책은 지금껏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제관계는 표방된 겉모습을 뛰어넘는 더 깊은 속사정이 존재하는 법이다.


결국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안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 당장 미국의 제안에 무심한 듯 보이고, 한국에 대해 최대의 적대성을 보이는 것 같아도, 그것은 체제를 내건 여러 번의 변화가 무시된 사실로 인해 분노와 경계심이 높아진 탓이지, 어떤 변화의 모색을 거절한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책이 출판되었다. ‘미국은 왜 북한 비핵화에 실패했나’라는 부제를 단 <폴아웃>(메디치미디어)이라는 책이다. 저자 조엘 S. 위트는 앞에서 말한 1990년대 이후 2018년까지 조선과 한국, 미국 등 국제사회가 밀고 당겨온 오랜 역사가 수많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도 왜 번번이 좌초되었는지를 수많은 사실과 증거자료들을 통해 복기(復棋)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때문에 조선의 핵 위기가 크게 붉어질 때만 잠깐 관심을 갖다가 무심한 관성으로 되돌아가 번번이 때를 놓쳤다. 한국은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당시 평화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모색을 보여 왔지만, 한반도 분단구조를 돌파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반면에 조선은 좀 더 크고, 확실한 전환의 대가를 보장받기 위해 몸값을 키우려다가 자꾸 기회를 잃었다. 이처럼 30여 년 동안 몇 번의 호기를 놓칠 때마다 한반도는 한층 더 위험해졌고, 이제는 누구도 쉽게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그냥 이렇게 5년을 흘려보낼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에 발목 잡힌 곤혹스러운 형세가 동아시아에 전이되지 않게 하려면, 미국이 좀 더 분명한 평화 전환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또한 핵보유국으로서 조선을 인정하면서도, 조선이 더는 핵을 확대하지 않도록 그들이 원하는 평화협정을 선제적으로 맺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세계 냉전체제가 끝났다고 말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는 더욱 강화된 열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5년을 그냥 넘기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위험한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된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