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두 국가의 현실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묻다(2026. 7. 29)

박종운 변호사(법무법인 에셀, 사회선교사, 평통연대 평화담론위원장)


적대적 분단을 평화적 공존으로, 비핵화의 당위를 핵위험 감축의 현실정책으로


한반도 평화 담론은 두 개의 무거운 현실 앞에 서 있다. 하나는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지속적인 핵 개발을 통해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현실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평화정책은 불편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분단과 핵무장을 정당화하거나 그 현실에 순응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 인식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걸음이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의 질문은 “두 국가론에 찬성할 것인지”, “비핵화를 포기할 것인지”의 양자택일이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두 국가 현실을 어떻게 ‘전쟁 없는 평화공존’으로 전환하고, 이를 장래의 평화통일로 이어갈 것인지,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완전한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증대하는 핵 위험을 어떻게 동결하고 감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통일의 포기가 아니다


남과 북은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을 했고, 국제사회에서는 각각 별개의 국가로 대우받아 왔다. 동시에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그동안 국제법상의 두 국가성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가 병존해 온 것이다.


북한이 제기한 ‘적대적 두 국가론’은 이러한 관계에서 통일과 민족적 특수성을 제거하고 적대적 두 국가관계만 남기려는 의도가 아닌지 크게 우려된다. 이는 평화 공존론이 아니라 영구 분단론에 가깝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정부, 군대, 법률과 경제질서를 갖고 살아온 현실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유일한 정통성만 주장한다면, 상대는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하거나 흡수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는 통일을 앞당기기보다 적대와 군비경쟁을 심화시킨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적대적 두 국가론’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관계’이다. 남과 북은 상대방의 체제, 주민의 안전을 존중하고 무력통일과 흡수통일을 배제해야 한다.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연락 채널을 복원하며, 재난·보건협력과 이산가족 문제 등 협의가 가능한 과제부터 찾아서 대화와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공존을 분단의 최종상태로 고착시켜서는 안 된다. 교류와 협력, 남북 연합과 공동체 형성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결합을 모색한다는 전망을 열어두어야 한다.


‘평화적 두 국가관계’는 통일을 포기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통일을 다시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전쟁 직전의 한 민족보다 평화롭게 왕래하고 협력하는 두 국가가 통일에 더 가깝다. 평화공존은 통일의 반대말이 아니라, 통일을 강제와 흡수가 아닌 주민들의 주체적 선택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이다.


‘평화적 두 국가관계’로 나아가려면,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평화통일 정책이 국민의 삶과 연결되고 느껴지도록 설득력 있는 정책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비핵화의 목표를 유지하되, 출발점은 달라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쉽게 폐기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북한 핵은 남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한반도를 미·중·러·일의 전략경쟁(Strategic Competition)이 집중되는 공간으로 만든다. 또한 핵무기를 그대로 둔 채 평화통일을 추진할 경우, 주변국들은 통일한국이 핵무장 국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 틀림없다.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통일 과정에서 주변 4대 강국의 이해와 협력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북한을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로 평가하는 것과 핵보유국임을 법적·정치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북한 핵을 용인하거나 합법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완전하고 신속한 비핵화만을 협상의 입구로 고집하는 것이 현실적인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안전과 군사력 보완, 대외협상력과 정권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핵 폐기를 의제로 삼아 대화와 보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북한의 핵 능력이 계속 증강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 또한 용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비핵화의 궁극적 목표와 당면과제를 구분해야 한다. 최종 목표는 한반도에서 핵무기와 핵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첫 단계는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운반수단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중단하고 동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인 해법은 ‘검증·가능한 동결 - 실질적인 감축’의 단계적 접근이다. 먼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핵물질 생산과 새로운 핵시설 건설을 중단하고 국제적인 감시와 검증 체계를 복원해야 한다. 동결은 더 나쁜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는 응급조치이다. 북한의 동결 조치에 대해서는 제재 완화, 인도적 지원, 연락사무소 설치, 적대행위의 중단과 같은 상응 조치를 단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핵물질 생산시설의 폐쇄와 해체, 핵탄두와 미사일의 감축, 핵무기 수량의 상한 설정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대북 안전보장, 제재 해제와 동북아 다자안보 체제의 구축을 핵무기 폐기와 결합해야 한다. 비핵화와 평화 체제는 어느 하나가 완성된 뒤 다른 하나를 시작하는 과제가 아니라, 동시에 진전되어야 할 병행 과제이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에도 물론 위험이 따르지만, 그 위험 때문에 아무런 시도나 협의를 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탄두와 핵물질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완전한 해결만을 요구하다가 위험의 무제한적 증대를 허용하는 것은 원칙적인 정책이 아니라 무책임한 정책이 될 것이다.


평화는 통일을 미루는 일이 아니라 준비하는 일이다


두 국가론과 비핵화는 서로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남북이 상대방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핵으로 남한을 위협하는 한 평화적 두 국가관계는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평화적 공존과 핵 위험 감축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현실의 두 국가를 부정하며 적대와 군비경쟁을 계속할 수도 없다. ‘적대적 두 국가’를 ‘평화적 두 국가’로 바꾸고, 이를 남북 연합과 평화통일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도 포기할 수 없다. 다만 완전한 비핵화만 반복하면서 북한 핵의 증강을 방치하지 말고, 검증·가능한 동결과 감축으로 나아가는 현실적인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되 영구 분단을 거부하고, 북한의 핵 능력을 직시하되 핵무장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을 견디며 평화공존을 평화통일로, 핵 동결과 감축을 비핵화로 이어가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 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