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의 광복절을 전쟁공포로부터 해방절로_ 배기찬 위원장(2024. 08. 13)

8.15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새롭게 국권을 회복했다는 의미에서의 ‘광복(光復)’이고, 또 하나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에서의 ‘해방(解放)’이다. 그래서 8.15는 정확하게 말하면 ‘광복절’이자 ‘해방절’이다. 그런데 이 해방에도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고,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지속된 전쟁상태, 곧 2차대전의 아시아판인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또한 이날은 단지 우리 민족만이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 동아시아태평양의 모든 민족들, 나아가 일본 국민들도 지긋지긋한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날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지 79주년이 된 오늘날, 한반도는 한국전쟁의 발발 이후 지속된 전쟁상태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53년 7월,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의 전투는 멈추었지만 평화는 이룩되지 못했다. 지난 70년간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가 수시로 도래했고,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DMZ와 NLL에서 벌어졌다. 남과 북 사이에는 일시적 화해와 협력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부정하고 대립하며 적대하는 관계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북한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대북 전단 살포와 이에 대응한 북한의 오물 풍선,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각종 군사대비체제와 이에 대응한 북한의 전술핵무기 일선 배치, 대화와 협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강경 대결만을 추구하는 남북관계, 미국·일본·한국 대 중국·러시아·북한의 대립구도는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8.15 ‘광복절’을 전쟁의 위기, 전쟁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절’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아래 세 가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첫째, 남과 북은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남과 북은 유엔과 온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1948년 8월 15일과 9월 9일에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에서 합의했던 것처럼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해야 한다. 이 점에서 서로의 법제도를 정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전쟁공포를 유발하는 대북 전단살포와 대남 오물풍선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둘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의 전투를 중지시켰지만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정전협정 제4조 60항에 따라 전쟁당사자들은 평화협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8월 2일, 독일이 유엔군사령부의 18번째 회원국이 된 것은 ‘대북억제력’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라도, 정전체제를 항구화하여 평화체제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한미연합 군사연습인 ‘을지자유의 방패(UFS)’가 8월 19일 처음으로 북한의 핵공격을 전제하여 진행되는 이때, 한미군사훈련과 북한의 전술핵무기 배치 등을 안건으로 하는 군사 대화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한미동맹과 북한은 서로를 군사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재래식무력과 핵무력을 악순환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조그만 군사적 충돌이 핵전쟁으로 비화되어 온 민족이 절멸할 수 있다. 이제는 ‘군사억제’가 아니라 ‘군비통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선제타격’을 외칠 것이 아니라 ‘군사대화’에 나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