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7.4 남북공동성명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_정종훈 교수 (24.07.05)

1972년 7월 4일 상부의 뜻을 받들어 남쪽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쪽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합의하여 발표한 소위 7.4 남북공동성명은 조국통일의 세 가지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당시 군사독재자 박정희와 전체주의자 김일성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해가 바뀌기도 전에 유신헌법을 제정한 것과 수령 유일 체제를 확립한 것은 남북공동성명의 저의(底意)를 의심하도록 만들었지만, 적어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조국통일의 세 원칙’만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이정표로써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처럼 사용된 적이 있다. 남북이 모두 강대국 사대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남쪽 당국은 한미일 동맹을 운운하며 미국의 충견(忠犬)임을 자처하고 있고, 북쪽 당국은 조중혈맹의 초석 위에다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작금의 한반도는 한미일의 한 축과 조중러의 한 축 사이에서 긴장과 대립의 신냉전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둘째는, 통일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인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북쪽은 핵무장 선언과 함께 군사적 위협을 받을 경우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며 공언하고 있고, 남쪽은 미국의 원자력 핵 추진 항공모함을 들여와 북쪽에 대한 핵 공격을 포함한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을 한반도 근해에서 실전(實戰) 못지않게 전개한 바 있다.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을 뿐 작은 빌미나 촉발제가 있기만 하면, 남북은 당장 전쟁의 도가니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셋째는, 사상과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과 제도’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가. 사람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상과 이념과 제도는 언제든 대체되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에 있음을 함축하는 원칙이다. ‘민족적 대단결’은 자민족 이기주의나 타민족 배타주의로 전락할 수 있기에 사실상 주의를 요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최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쪽의 대한민국을 전쟁 중의 적대 국가로 규정함으로써 혈연에 기초한 낭만적인 민족 정서를 완전히 부순 것은 아직은 성급했다고 여겨진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조국통일의 원칙들 이외에도,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런데 지금 남북 당국은 문재인 정권에서 합의한 9.19 군사합의마저 중지하거나 파기했고, 언론의 자유를 명분으로 한 탈북민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와 그에 대응하는 북쪽의 오물 풍선,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대북확성기 방송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코리아 리스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뿐 아니라 주가 폭락과 함께 한국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7.4 남북공동성명은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쪽의 민주정권들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하여 남북 예술인/체육인 교류, 세계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 금강산 관광, 개성 관광, 개성공단 운영 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한반도에 평화의 물결이 넘실대도록 하는 일에 공헌했다. 그런데 지금의 한반도는 어떠한가. 한반도 전역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좁은 땅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승자나 패자가 따로 없다. 모두가 패자이고, 모두가 공멸할 뿐이다. 이제라도 남북 당국이 평화의 초석으로 길잡이 역할을 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의 본래 정신으로 속히 돌아가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