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 인식과 방식 바뀔 때 됐다(22. 05. 17)

2년 넘게 코로나 청정지역을 자랑하던 북한의 방역망이 뚫렸다. 연일 수십만 명의 발열자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말부터 5월 15일까지 집계된 발열자가 15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백신 지원을 거부해왔던 북한으로서도 이제 거부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백신 지원 의사를 적극 내비치고 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선제타격’ 언급으로 자칫 대결 국면으로 갈 수 있는 한반도 상황이 백신 지원이 성사돼 대화와 교류의 국면으로 전환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북 백신 지원이 성사된다고 가정했을 때 고려해야 할 게 있다. 1990년대 중반의 대북 식량 지원의 연장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경제적 위기에다가 자연재해까지 겹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굶주려 널브러진 시신들, 꽃제비들의 모습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교인들을 비롯한 전국민이 이들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 나섰다. 남북이 한 동포임을 확인한 가슴 뜨거운 성과도 있었지만, 북한에 대한 시각이 아직도 그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부작용도 남았다.

OECD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시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의 기준은 ‘긴급상황’이다. 그 긴급상황은 자연재해, 분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를 돕는 피난처, 식량·식수, 보건·의료 제공은 인류애적이고 중립적이고 독립적이고 공평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일시적인 것이어야 한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지원’이란 말을 꺼려왔다. 우리는 정부나 민간단체(NGO)나 가릴 것 없이 ‘지원’이란 말을 쉽게 쓰지만 도움을 받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2000년대부터 나온 게 ‘개발·협력’이라는 말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give and take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요청이기도 하고, 현실을 반영한 대북지원단체들의 인식이기도 했다.

북한은 코로나 상황이 엄중했던 지난 2년간, 그때는 남북관계가 나쁘다고 할 수 없었던 문재인 정부 기간이었음에도 남한의 지원을 일체 받지 않았다. 남한의 지원을 받을 경우 엄중 처벌이라는 명령도 떨어졌다. 우리측 통일부나 지자체, 대북지원단체들이 나름 여러 루트를 통해 북한의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이러한 북의 입장은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북 백신 지원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그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개발·협력에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줄 준비는 되어 있다. 그것이 의료품이나 식량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받을 준비는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북한한테 뭘 받는다? 뭔가 어색하다.

주고 받는 것, 그것은 흔히 비즈니스에서나 있는 일이다. 대북지원단체에서는 일방적으로 주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제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우리의 자세를 바꿀 때가 됐다. 주고 받을 준비를 할 때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북지원단체가 ‘사회적 기업’ 형태로 ‘대북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지난해 북한이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보고서(VNR)는 우리의 인식 개선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SDG(지속가능한 개발목표), PDM(Project Design Matrix), M&E(모니터링과 평가) 등 우리한테는 낯설 수도 있는 국제개발의 이슈들이 지금 북한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과거 1990년대의 북한이 아니다. 북한은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북한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북지원단체의 인식이나 사업방식도 바뀔 때가 됐다.

김성원/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