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평화 후 통일론’의 허구(19. 07. 09)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다. 통일이 먼저냐? 평화가 먼저냐? 통일은 왜 해야 하나? 이런 문제들은 이미 구태의연한 문제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어느 것 하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없다.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상당한 세월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 외쳐왔다. 그 세월 속에서는 통일이 당연지사로 여겨졌지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가 없었다. 반만년 세월을 한 민족으로 함께 살아왔으니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남한만으로도 잘 사는 나라,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된 세대는 통일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데 왜, 꼭 통일을 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게 되었고, 기성세대는 그 질문에 답변을 해야 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평화적 통일, 혹은 ‘선 평화 후 통일론’이다. 통일을 빙자해서 평화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급속한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평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평화만 보장된다면 현상유지도 무방하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다만 통일은 외면할 수 없는 너무나 지당한 역사적 과제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후통일이란 말이 마치 수식어처럼 따라붙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선 평화 후통일 운운 하는 것은 통일 없는 현상유지론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현상유지론의 배경에는 지금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40~50배나 된다는 경제적 자부심과 교만이 깔려 있다. 북한은 우리의 경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북한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역사적 무지가 가득 찬 사고의 결론이다.

현상유지론이 대세처럼 굳어갈 때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이 핵보유국, 다시 말하면 세계 군사 강대국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대한민국이 세계 12대 경제부국이라면 북한은 세계 5~6대 군사 강국이 된 것이다. 북한을 GNP가 1000불도 안 되는 후진국(약소국)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과 부딪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교만이 팽배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북한이 수 년 내에 망할 것이니 그들의 군사대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무시하고 있지만 무시한다 해서 북한의 존재감이 없어지는가?

북한을 세계 군사대국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위 극우세력들이다. 불행히도 한국교회 성도들의 70~80%가 앞서 말한 극우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통일운동은 거의가 북한 교회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이 무너지면 먼저 달려가기 경주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교회의 회복! 그것 자체로만 보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가! 그런데 북한 교회 재건론의 바탕에는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세계 제국주의가 무한정 확장되어 가던 시절에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언어적, 문화적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과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당시 선교사들이야 오로지 복음적 열정만 가지고 제국주의의 칼날을 이용했을 뿐이지만, 후대 역사는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들로 단죄했던 것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는 단순히 복음적 열정을 빙자해서 북한 교회 재건이라는 명목에만 충실해서는 안 된다. 흡수통일에 편승하거나 흡수통일론의 선봉장이 돼서는 안 된다.

남북의 분단 상황을 단순히 공산주의라는 악마의 발톱에 희생된 결과물로 여기는 역사인식을 가지고는 한국교회가 통일한국의 주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진리이다. 분단의 역사를 성서적 빛으로 깊이 조명하고, 바람직한 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해 우리 민족이 치렀던 대가가 무엇인가를 성서적 가치를 통해 엄중하게 반성하고 통일한국이 어떤 사회, 어떤 민족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북한이 지금처럼 항상 가난한 빈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환각도 버려야 한다. 성서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애, 일찍이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실현하라고 명하신 희년사회의 실현을 열망하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실현하는 나라를 꿈꾸어야 한다. 그리하면 한국교회는 너무나 분명하게 통일한국 그 이후의 민족공동체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민족 앞에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제는 통일 이후의 미래적 과제가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실현해야 할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통일한국은 숙명이다. 평화통일이냐? 전쟁과 파멸이냐? 이것만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현상유지? 그것은 역사적 허구일 뿐이다.

강경민/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 평화통일연대 상임운영위원, 유코리아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