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19. 06. 04)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단어가 나온다. ‘샬롬’이라는 단어이다. 히브리어는 우리 눈에는 글자 같지도 않지만 그것은 가나안 방언으로부터 유래한 셈족어인데, 아람어로 기록된 일부를 제외한 구약성경 전부가 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정방형 문자로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쓴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알파벳의 어미형이 다르고, 발음부호나 모음기호가 다양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고대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뭔가 유혹하는 힘이 있고, 때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언어가 지니는 인간의 삶과 죽음, 살림살이에 대한 기술적(記述的) 묘미는 때로 감동을 주기도 하는데, 그 한 가지 단어가 ‘샬롬’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흔히 피스(peace) 곧 ‘평화’로 번역되지만, 이 번역어가 히브리어 샬롬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샬롬이라는 단어는 전쟁이 없는 상태, 곧 무전(無戰)이나 비전(非戰), 혹은 반전(反戰)만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립이나 대결이 없는 안전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평화라는 번역어는 샬롬에 대한 가장 근접한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샬롬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광범위한 의미는 무엇일까? 샬롬은 완전, 혹은 완전한 상태를 뜻하기도 하고, 신체상의 안전 혹은 건강을 의미하기도 하고, 행복, 번영, 복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평온, 만족을 의미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는 평정, 우정, 선린(善隣) 등 심리적인 평안, 곧 불화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샬롬이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갈등이나 대립이 없고 평안과 기쁨,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건강과 안녕, 안전과 복지, 곧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것이 잘되고 안전하고 안락한 행복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샬롬은 완전함(completeness)과 온전함(wholeness)에서 누리는 안녕(well-being)의 상태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이 히브리어 샬롬의 의미인 샘이다.

단지 평화라고 번역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수사(修辭)의 뒷면에 숨겨진 풍부한 어의(語義)는 드러난 언사(言辭)의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히브리어 단어 중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거리에 난무하는 폭력, 불화와 격정, 미움과 심리적인 살인으로 얼룩진 우리의 일상은 전쟁에 가깝다. 물고 물리며 험난한 하루를 헤쳐가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 긴장과 대립, 갈등과 대치, 그곳이 우리의 현장이다. 물리적인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정신적인 대결이다. 이데올로기적 대결이나 이념 갈등은 심리적 살인에 가깝다. 흑백논리, 마녀사냥식 재단(裁斷) 앞에서 순연(純然)한 신념은 설 자리가 없다. 종교인들마저도 별 차이가 없다. 세속지사에도 한 치의 양보 없이 거리를 시위하고 순교적 각오로 치부하는 사생결단에는 이해나 용서, 사랑이나 관용의 미덕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현실의 이해(利害)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우리의 내면을 관조하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는 하루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해와 배려, 용서와 관용은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복되도다. 그 사람, 평화를 만들어 가는 자”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