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평화(21. 07. 20)

평화(平和, peace)는 인류가 추구해 온 가장 고상한 가치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상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기에 인류는 거듭된 전쟁과 폭력, 인명살상과 상실, 자연의 파괴와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경험했다. 1차 대전과 같은 대규모의 국제적인 전쟁을 경험한 이후 서구에서는 반전(反戰)운동과 반전사상이 일어났고, 평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기독교권에서 계속되어 왔던 평화주의(Pacifism)사상과 더불어 192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의 평화학(Peaceology)은 학제간 연구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은 국제연합, UN과 같은 국제기구 창립의 동기가 되었고, 세계교회협의회(WCC) 또한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발의된 교회협의체였다.

서구에서의 평화, 혹은 평화운동은 따지고 보면 기독교 사상에서 배태되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의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란 라틴어 pacifici인데, 이 말은 대립이나 투쟁, 살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이들을 의미했다. 하르낙(Harnack), 캐둑스(Cadoux), 헤링(Heering), 헐스버그(Hershberger) 등은 폴리갑, 아데나고라스, 테르툴리아누스 등 교회지도자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군복무나 전쟁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2세기 후반기 이교도 켈수스(Celsus)는 이런 기독교의 전쟁 거부는 제국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 일이 있다.

그런데 첫 3세기 동안의 비전, 반전 전통과는 달리 콘스탄틴의 개종(312)과 기독교 공인(313) 이후 기독교는 제국의 종교로 화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반전, 평화사상은 퇴보했다. 350년 경 아다나시우스는 “살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일은 합법적이며, 칭송받을 일이라”고 그 변화를 지적했다. 기독교가 380년 국가종교가 된 후 기독교의 비저항적 태도는 416년에 와서 완전히 전위되었다. 결국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리스도인의 참전권은 ‘의로운 전쟁론’(just war idea)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변화를 윤리신학자 헤링은 ‘기독교의 타락’이라고 불렀다.

그후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재세례파 그룹의 메노나이트교회를 통해 평화주의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비폭력, 반전운동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보았고, 17세기 퀘이커, 18세기 독일의 형제교회도 이런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들 세 교회를 ‘평화를 지향하는 교회들’(Historic Peace Churches)이라고 부른다. 이들 교회가 중심이 되어 평화연구를 보다 근원적으로 이념-사상적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시도하여 비폭력(non-violence), 화해(reconciliation), 앙갚지 않음(un-retaliation), 기독교적 사랑(Christian love)의 실천을 주창하고 여러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이 현대의 기독교권 평화운동의 연원이 된다.

한국은 거듭된 외침과 19세기 이후 일본, 러시아, 중국과 같은 인접국간의 분쟁과 대립 속에서 전화를 경험하였고, 특히 6.25동란을 통해 전쟁의 참화를 경험하였다. 평화는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연구되지 못했다. ‘평화’라는 말은 수없이 사용되었으나 정치적인 구호에 지니지 않았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공존이나 반전(反戰), 비핵·비폭력, 혹은 평화에 대한 논구 자체가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

독일의 평화운동가인 바이재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는 “오늘과 같은 과학기술 시대에 있어서 평화란 곧 삶의 조건이다”(Die Verantwortung der Wissenschaft in Atomzeitalter, Göttingen, 1957)라고 했는데, 평화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기 전에 그것이 없으면 생존이 곤란해지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이런 환경이다. 전쟁이 없는 비전(非戰)이나 평화적 공존만이 아니라, 비무장운동, 반핵운동, 그리고 적대적 미움의 제거, 화해와 공존, 지역간 갈등의 해소를 위해 우리 기독교인과 기독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상규/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전 고신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