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삼균제도와 통일한국의 이상(20. 01. 21)

남북한의 이질적인 체제로 인해 남북이 지향하여야 할 통일한국의 이상에 대한 그림이 막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길을 잃었거나 앞길이 막막할 때에는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 최선이다. 남북한 공히 공유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이상으로 좌우 합작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이념인 삼균제도(三均制度)를 제안하려고 한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의 철권통치가 강화되면서 우리 민족은 마치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민족적 차별, 그리고 종교적 박해를 당하였다. 이에 항거하여 여러 방식의 독립운동이 있었고 임시정부를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해온 단체들이 통합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해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도 독립국가의 이상에 대한 좌우 이념논쟁으로 큰 갈등을 겪었다. 다행히도 조소앙이 삼균제도를 주장함으로써 좌우합작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삼균제도는 조소앙에 의해 1920년대 말에 기본 구상이 세워지고, 1931년 임시정부의 ‘대외선언’에서 체계가 정립되었다. 1941년 10월 28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의 이념적 통합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삼균제도의 건국 원칙’에 입각하여 ‘대한민국건국강령’을 제정, 공포했다.

새로운 대한민국 건국의 이상으로 채택된 삼균제도는 ‘정치의 균등’(참정권), ‘경제의 균등’(수익권), ‘교육의 균등’(수학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균제도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인민이 균등히 참정권을 가지는 일이며, 경제적으로는 인민이 균등히 수익권을 가지는 일이며, 교육적으로는 인민이 균등히 수학권을 가지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삼균의 각 항목을 하나의 축으로 삼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등, 민족과 민족간의 평등, 국가와 국가간의 균등을 다른 축으로 삼아 두 가지 차원에서의 삼균을 강조하였다.

‘대한민국건국강령’인 삼균제도는 조선왕조의 봉건주의와 일제의 제국주의적 통치를 종식시키고, 동시에 독립운동 주체들이 좌우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다시 말하면 삼균제도는 봉건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가 존재하는 국제사회에서 내부적으로 한민족의 동질적 발전을 도모하고, 외적으로 한민족이 인류의 공헌체로 존재할 가치를 이론화한 것이다.

첫째, 삼균제도는 일본제국의 식민지 통치와 달리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 교육적 차별이 없는 그러한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임시정부의 더 높은 이상을 담은 것이다.

둘째, 삼균제도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써 계획경제와 경제적 균등을 주장하고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를 실천과제로 제시한다. 이런 배경에서 해방 직후 북한과 남한에서도 혁명적인 토지개혁을 수행한 것이다.

셋째, 삼균제도는 봉건주의와 사회주의처럼 양반이나 노동자, 농민과 같은 특정 계급이 권력을 독점하는 비민주적인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정치권력의 균등을 제시한다. 한국이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원인은 복잡다단한 것이지만, 조선왕조 “5백년을 통하여 존재하였던 소위 양반, 당인간의 정치적 불균등”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정치균등’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넷째, 삼균제도는 당시의 독립운동 세력 사이의 좌우 대립을 극복하고 좌우합작을 모색하여 ‘사회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제3의 길’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분단 이전에 좌우가 합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강령에 나타난 삼균제도는 앞으로 남북이 통합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 은퇴교수,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