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란 말을 쓰지 말자?(21. 05. 18)

요즘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 입에서 ‘통일’이란 말을 쓰지 말고 평화나 교류협력 이런 실질적인 용어를 쓰자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전술(?)적인 측면에서, 기술적인 면에서 인정할 만하다. 그런데 ‘통일’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 입장을 가만히 들어보면, ‘통일’이라는 말이 남북 양측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다음세대들은 ‘통일’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우선 모두의 정서에 부합되는 용어를 쓰자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 논법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역사적인 과제에서 ‘통일’이란 명제는 어떤 언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다. 목표요 비전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용어이다. 마치 일제시대에 외교론, 전쟁론, 준비론 등 많은 방책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목표점은 ‘독립’인 것과 같다. 당시 ‘독립’이란 말을 금기시하고 다른 대체 언어를 쓴 많은 사람들이 친일 혹은 공산주의로 빠졌다. ‘통일’은 어쨌든 우리 한반도 현대사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물론 ‘통일’이라고 해서 어느 한쪽을 강제화한 통일이나, 정치적으로 합해지는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계적인 과정을 무시한 채 통일지상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대만식 → 홍콩식 → 독일식 통일’로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론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일’이란 용어 자체를 부끄러워하면서 통일을 감추거나 숨기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언저리 속에 혹시라도 통일이 안됐으면 좋겠다는 보신주의,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는 불순함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뜩이나 통일 반대세력이 많은데 ‘통일’이란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 점차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다.

통일은 한반도의 미래이다. 동북아의 미래이다. 아니 세계사의 미래이다. 남북대화의 역사를 보면 한 발 전진했다가 두 보 후퇴하고, 두 보 후퇴했다가 한 발 전진하는 전진과 후퇴의 역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남북의 근시안적 관계를 넘어서 동북아의 공존과 번영이라는 원시안적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이 남북을 넘어 러시아, 중국과의 평화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평화와 동아시아 전략에 큰 성과와 디딤돌이 됨을 주지시켜야 한다. 한반도 통일이 우리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고, 한반도의 통일이 이데올로기를 넘어 동북아 전체 발전에, 경제에, 생활에 실제적인 보탬이 된다는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요즘 날씨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대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계절이다. 그런 것처럼 한반도의 정국이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시계가 전혀 보이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햇볕은 비칠 것이다. 안개는 물러갈 것이다. 꽃샘추위에 겨울을 느끼지만, 봄이 분명히 오듯이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왕조국가 북한에도 봄이 올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순풍을 어찌할 수 없는 그때가 올 것이다. 지금은 영원히 분단만 있을 것 같지만, 전도서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이 때와 기한이 있기 마련이다. 남과 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는 때……. 계절의 이상한 징후가 오히려 때가 가까워짐을 느낀다. 실제로 통일은 지금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더욱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통일은 더욱 가깝다고 여겨야 한다. 1937년 중일전쟁 직후 많은 이들이 독립은 틀렸다고 변절할 때 이승훈 장로님, 김약연 목사님은 독립이 오히려 임박하다고 유언을 남기며 분투를 부탁했다. 독일의 경우 통일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그때도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통일의 봄은 왔다. 긍정적으로 역사를 보아야 한다. 사람의 생각으로 통일을 바라보지 말자! 통일과정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하나님의 개입이 반드시 있을 것임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가 예고 없이 찾아와 온 세계를 뒤흔들었듯이 한반도에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 무엇의 큰 변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일어난다. 꼬인 한반도, 지루한 사이클, 이 고리를 깨는 것은 현재로서는 하늘의 권능밖에는 없다. 우리의 기도가 더욱 절실해지는 때이다.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지고 어둠과 정사의 악한 권세가 무너지게 되는 단초가 제공될 것을 소망해 본다. 답답한 한반도 정국 가운데, 어두운 코로나 환경 가운데 한줄기 빛을 사모하는 심정이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는 주님의 탄식이 들려온다. 항상 낙심치 않고 기도해야겠다는 절박함이 더욱 든다. 점점 더 임박해 오고 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더욱 가까이 밝아오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한 때이다.

김동춘/ 서울제일교회 목사,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