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평화담론의 두 흐름(21. 03. 23)

70여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한반도 분단은 한국교회의 평화 담론을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양분하고 있다. 첫 번째 흐름은 반공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흡수통일식 평화이다. 분단 상황의 장기적 내면화에 따른 투철한 반공 의식과 문화 속에 주적 북한을 섬멸하고 남한식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영토적 확장이 궁극적인 한반도의 평화라고 생각하는 흐름으로 한국교회 주류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힘의 우위로 상대방을 압제하는 로마식 평화(Pax Romana)가 한반도 분단 상황에 적합한 현실적인 평화 개념이라고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오랜 분단 사회 속에서 형성된 정치 사회 경제적 기득권의 유지가 세대를 이어오면서 강화되어 온 측면이 있다. 힘의 우위에 기반을 둔 평화의 개념만이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우월한 힘의 논리에 기반한 평화 담론은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관점으로 구체화 된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힘이 가지고 있는 우월함을 북한에 관철시키는 평화만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믿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평화와 통일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북한의 기득권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힘의 우월함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평화는 결국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미움, 복수와 폭력의 성찰 없는 용인을 가져오는 반평화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흐름은 비록 주류는 아니지만 화해와 존중, 대화와 협력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갈 수 있다고 믿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둔 평화는 잠정적인 억압에 불과한 폭력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 비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몸소 실현하고 보여준 평화는 백마 탄 개선장군과 같은 힘의 우월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왕의 겸손과 희생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평화를 함께 이루어가야 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협력, 대화와 화해 없이는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용서가 하나님과 가로막혔던 죄악의 장벽을 허무는 화해의 물꼬가 되었던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용서와 희생이 분열과 갈등, 미움과 적대의 장벽을 허무는 평화의 주춧돌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과 폭력, 복수와 흡수의 가치가 아니라 존중과 대화, 희생과 포용, 화해와 인내의 가치를 몸소 실현해가는 현실적 과정이 평화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필요한 평화는 힘(power)의 포기를 통한 겸손한 평화다. 힘의 문제를 잘 배분하고 풀어내기 위해 우리는 평화가 필요한 것이다. 남북한 분단이라는 거대한 사회 구조적 힘의 갈등과

대립의 내면화가 고스란히 교회 안에도 힘의 갈등과 대립의 문제를 일으킨다. 교회가 분단된 한반도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와 성도간 힘의 갈등과 대립의 문제로 드러나기도 하고, 교인들 서로가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기도 한다. 단순한 힘의 대결로 갈등을 풀어나가려는 경향이야말로 가장 반평화적인 모습이다. 서로를 악마화함으로써 폭력을 용인하게 된다. 교회는 갈등과 대립, 제압과 폭력을 넘어 진정한 평화를 구체적으로 이루어가는 공동체로 존재하기 위해 힘의 포기를 통한 겸손한 평화를 진지하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평화는 다양성의 존중이며 공존이다. 분단의 장벽이 반평화적인 이유는 적대와 갈등, 대립의 일상적인 관계가 다양성의 존중을 막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획일화시킴으로 공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가치의 세심한 고려와 존중을 위한 공동체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곧 평화를 일구어 나가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평화를 일구어 나가는 세밀한 과정을 경험할 수 있길 바라고, 그 평화의 경험이 한반도를 평화의 가치로 새롭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

김영식/ 평화통일연대 운영위원, 유코리아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