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봄길을 만들 때이다(21. 03. 16)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로 한반도의 상황은 음울하고 암담해 보인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되었던 남북정상회담의 흥분과 기대는 사라졌고, 그 이전의 남북관계로 다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 운전자로서 평화체제를 구축해 보겠다던 우리 정부의 노력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물거품처럼 되었고, 남북 간에는 개성공단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와 함께 적대적인 험한 말들이 난무(亂舞)하며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냉철한 복기(復棋)를 해야 한다.

첫째로, ‘남북관계’는 어디까지나 남북 당국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끌고가야 하는 관계이지 주변 국가들의 눈치를 살피다보면 한 단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의 주요 국가들은 남북관계를 자기 국가의 이익 차원에서 판단하며 남북의 긴장과 갈등, 대립관계를 오히려 선호하고 즐기는 양상이다. 우리 정부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곧바로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남북교류를 활성화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실기(失機)였다. 이제라도 우리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한민국과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한 하나의 정상국가로서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관례대로 대등한 국가로서 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한미관계’는 평등한 동맹관계이어야지 주종관계나 종속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조선 말에 수교한 이래로 수많은 선교사나 외교관을 통해서 우리의 근대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대를 파병하여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일조했던 국가이다. 그러나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기 위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했고, 일본 패망 직전에는 소련을 견제하고자 한반도에 분단을 관철시켰던 국가이다. 미국은 자국의 중요한 이해관계에 직면하면 언제나 자기 국가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도모하는 역사를 이어왔다. 그것은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주한미군이 남한 지역에 주둔하는 것이 동맹국인 우리를 위한 것인지, 동맹국의 미명 아래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셋째로, ‘북미관계’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신뢰를 형성하고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서로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는 한국전쟁 이래로 서로에 대한 불신의 높은 장벽이 있다.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는 우리 대한민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미국보다는 우리 대한민국을 더 신뢰하며 물리적으로 더 가깝게 여기고 있다. 그 결과로 미국은 ‘한미동맹관계’를 강조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미 간의 신뢰구축과 북미 간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우리 정부가 명실상부한 운전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핵무기 폐기와 북미수교, 종전선언과 평화선언 등의 주요 사안들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넷째로, ‘한일관계’나 ‘한중관계’ 또는 ‘한러관계’와 같은 주변 국가와의 관계가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관계 등 한반도 상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변수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과거사 해결의 문제와 미래지향적 발전의 과제 그리고 한미일 군사관계와 협력적인 경제관계 등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중관계는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번영이라는 경제적 차원과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의 차원 그리고 한미동맹의 차원 사이에서 미묘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러관계는 모든 영역에서의 무한한 잠재력과 유라시아와의 협력강화, 그리고 정부의 신북방정책 등에 새로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를 면밀히 검토하며 적절한 국가 간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나 남북의 상호번영의 길은 더욱 요원(遼遠)해질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지혜와 용단(勇斷)이 필요한 이유이다.

드디어 봄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추웠던 지난 겨울이 저 멀리 물러나고, 땅속에 묻혀 있던 생명력이 솟구치는 지금, 우리 한반도 모든 영역에 봄이 와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에 봄이 와야 한다.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한반도의 겨울을 물리치고 봄을 재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밖에는 없다. 편견에서 벗어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외골수적인 자신의 주장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고, 때로는 이익보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주장하고,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앞장서는 우리 기독교인과 평화통일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종훈/ 연세대 교수, 평화통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