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의 역사적 책무(21. 02. 02)

남북관계의 기본은 7·4 남북공동성명이다. 그 핵심은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후 남북 유엔 동시가입(91.8.8), 남북기본합의서(91.12.13), 그리고 역사적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2000.6.13-15)과 6·15 남북공동선언(2000.6.15.)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새 역사를 열었다. 이후 10·4 남북정상선언(2007.10.4.),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국방위원장 체제에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2018.4.27.)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2018.5.26.)이 진행되었고,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2018.6.12.),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선언(2018.9.19.), 2차 북미정상회담(2019.2.26-28), 그리고 전격적인 판문점에서의 북미정상회동(6.30) 등이 숨가쁘게 진행되어 왔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과 남북정상의 만남은 우리 민족분단 70년사에서 가장 획기적이며, 역사의 흐름과 판도를 바꾸는 거대 사건이었다.

이러한 남북한간의 평화와 교류 및 통일을 향한 오랜 노력은 실로 분단으로 야기된 많은 역사의 왜곡과 민족 삶의 아픔과 고통,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분쟁의 구조적 고리를 끊고 새로운 평화로 나아가자는 민족의 피맺힌 염원이자 통일을 향한 절규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분단과 갈등으로 수많은 국내외적 긴장과 국지전, 상호 비방 등이 끊어지지 않았고, 이는 남북 내부의 정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쳐왔다.

6.15선언, 10.4선언, 판문점선언, 평양선언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발전 △남북간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와 전쟁 위험의 실질적 해소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력과 남북한 및 북미간의 대화폭이 넓어지고, 세기적인 북미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진행될 수 있었다. 여러 남북 공동선언에도 나타나 있듯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전쟁 억제와 평화 지향, UN회원국인 남북의 상호인정,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증진, 경제, 사회, 문화의 상호협력 등이 확대되고 지속적인 정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간 평화의 가장 기본전제는 국지적인 갈등과 분쟁으로 인한 무력행사나 인명살상, 경제적 손상 등의 불의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DMZ는 밤낮으로 남북의 젊은이들이 경계하며 엄청난 무기들이 상호 대치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가능권역이다. 오랫동안 남북은 고성능 장비로, 상호비방 방송으로 상대를 겨누었고, 남북간 상호비방의 전단들을 바람이나 기구를 이용하여 날려 보내며 긴장을 높이곤 하였다. 이런 전통적인 쌍방 비방 행위들은 상호적인 것으로 오늘의 발전된 방송통신 환경에서 별로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어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호 이용해온 게 현실이다.

남북간 합의로 이런 행위들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일부 탈북단체들의 북한 비방 전단들이 북에 살포되어 마침내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우리 내부에도 전단 살포가 북한인민에 대한 심리전으로 어느 정도 유효하다는 주장과, ‘대북전단 살포는 112만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적극 반대의 입장이 충돌해 왔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그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위에 있진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근래 이런 행위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2020.12.14.).

역사적으로 우리는 일제 36년 침탈 이후 8.15 광복에서도 승전국의 위치에서 정당한 우리의 주권을 주장하거나 누리지 못했고, 일본 대신 남북으로 갈라지는 인류역사상 가장 불합리하고 비극적인 조처를 감내해야 했다. 카스라-테프트밀약(1905.7.29.)과 샌프란시스코 협약(1951.9.8.) 등에서 우리는 정상국가의 권리를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근래에도 한국과 중국의 사드(THAAD) 배치 국면에서 우리는 심대한 국민 자존심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이 밖에도 미국은 독도 영유권에서의 한일 갈등, 근래 한일 무역분쟁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에서 철저하게 자국 우선주의는 물론 일본 중심의 정책과 관점을 유지해 우리 민족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다. 미국은 한국전에 많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보낸 혈맹임이 분명하나,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웅대한 비전 앞에 우리는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자주적이며, 평화적으로 그리고 민족 대단결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DMZ에서의 긴장과 충돌은 남북 양국 특히 남한의 많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심대한 피해와 생명의 위협을 끼치게 된다. 불법적 전단 살포 등은 가장 근본적이며 기본적인 주민의 안전과 생명에 위협이 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이를 제한하는 것은 언론 자유 등의 보편적 가치와는 별로 상관이 없고,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안전 담보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성사된 많은 공동선언의 정신을 살려 전쟁반대와 평화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기술과 자본의 상호보완적 협력으로 교류와 협력 및 평화의 길로 단계적이며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관된 철학과 기본정책으로 갈등의 제거, 교류협력의 확장을 통한 움직일 수 없는 평화의 거보(巨步)를 걸어 나가는 것, 그것이 남북 당국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민족적 책무인 것이다.

김홍섭/ 인천대 명예교수, 평화통일연대 동북아평화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