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20. 08. 25)

“주말에는 집에 머물러 달라”는 정은경 질병관리 본부장의 말에 따라, 골방에 틀어박혀 이 글을 쓴다.

텔레비전을 켜니 나의 작고 허름한 방은, 금세 세상의 말들로 무성해진다. 8월 15일 이후 코로나 환자가 급증한다. 견고하고 일사불란했던 정부의 방역 체계는 무너지는 중이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비종교인은 종교인을, 종교인은 카페와 술집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을, 무너지는 방역 체계의 원인이라고 가리킨다. 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나는, 침묵으로 소리친다. ‘지금, 여기,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발병한 지 9개월이다. 각 나라와 각 인간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습을,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언론은 부동산과 주식 가격,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내리는 일은 대서특필하면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에는 숫자 하나를 더할 뿐이었다. 8월 22일 오후 6시 15분 우리나라 코로나 사망자는 309명이고, 전 세계 사망자는 803,525명이다. 8십만 3천 5백 2십 5명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종말은 통계 숫자로 치환된다.

누구도 생명의 소중함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질병이 확산하면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죽게 되는 인간의 나약한 삶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침묵이 의아하고 소름 끼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78세 여성이 20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는 사망하기 며칠 전 사랑제일교회 관련 감염자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망자의 이름은 ‘308번째 사망자’다. 엄연한 이름이 있을 텐데, 그녀는 308번째 사망자로 불린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내였고, 엄마였을 텐데, 308번째 사망자로 불린다. 아무도 그녀의 죽음이 그녀의 삶에서는 유일한 죽음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308번째 사망자일 뿐이다.

교회 관련 감염자가 늘자, 정부는 18일 서울과 수도권 교회의 대면 예배를 금지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하루 지나 소속 교회에 다음과 같은 공지를 보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적 호흡이요,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생명과도 같은 예배를 그 어떤 경우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국면에서 종교가 생명에 관해 말하는 방식을 보며, 나는 또 한번 좌절한다. ‘생명과도 같은 예배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생명을 위해 예배를 중단해야 한다’는 말 사이에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2000년 전 예수는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는데, 오늘날 종교는 종교를 위해 생명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람과 대화할 때는 마스크를 써 달라, 밥을 먹을 때는 침묵을 지켜 달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일은 피해 달라, 잠시 예배를 중단해 달라, 그러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이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가 거리에선, 우리 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무너지는 건 방역 체계가 아니다. “주말에는 집에 머물러 달라”는 말이, “제발 사람 살려 달라”는 말로 들려, 무섭고 살 떨린다.

이규혁/ 평화통일연대 청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