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코리아와 K-피스(20. 07. 21)

남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두 국가로 존재한다. 남북 간에는 전쟁을 멈추고 상생의 길로 나아가자는 합의가 이미 30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런데 왜 한반도는 아직도 완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크게 보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대결하는 지정학적 운명 때문이고, 작게는 남북 간의 정치 갈등과 그로 인한 남남갈등의 역학 때문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BTS와 봉준호가 문화적 저력을 전 세계에 어필했다면, 코로나19 국면에서 떠오른 K-방역 시스템은 새로운 차원에서 한국을 각인시키고 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수출 입국을 천명한 지 반세기도 채 안 되어 전 세계 반도체와 가전제품, 철강과 선박, 건설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2016년 시작된 촛불 시민 혁명으로 2017년 평화적·제도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이 또한 세계 시민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군부독재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 중 인권과 민주주의가 만개한 나라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시민사회 역량에 있어서 우리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제는 K-피스를 추구할 때이다.

북한은 어쩌다 핵을 개발하게 되었을까? 체제 안보 때문이다. 소련이 개혁개방의 물꼬를 튼 뒤 동서독이 통일하고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일제히 체제전환을 시도하던 시기, 남한은 1990년 소련과, 1992년 중국과 각각 수교했다. 북한에겐 충격적 사건이었다. 다급해진 북한은 1991년 1월 김용순 국제담당 비서를 미국에 보내 북미수교를 타진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북한이 이때 미국·일본과 수교했더라면 핵 카드를 거머쥘 필요가 없었다. 1991년 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됐고 북한은 1992년 1월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핵시설 규모를 놓고 “실험실이다”, “아니다 공장이다”를 놓고 씨름하다가 1993년 북한이 IAEA를 탈퇴하며 제1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다.

그후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합의로 두 차례 해결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됐고 급기야 2017년 11월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제3차 북핵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불행히도 2019년 2월 북미협상이 꼬이면서 남북관계는 냉각기를 거쳐야 했다. 남한의 대화 시도에 일체 불응하던 북한은 올해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을 통해 거칠게 말문을 열었다. 16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현란한 몸짓이 뒤따랐다. 7월 9일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했고 10일 김여정은 북미협상을 재개하자는 뜻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우리는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북한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변경했다. 핵무력 완성으로 체제 안보에 자신감이 생겼으니 경제발전에 전념하겠다는 공언이었다. 싱가포르 합의에서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 하노이에서는 체제를 보장하면 핵을 포기하겠으니 핵 제조 역량의 8할을 포기하면 제재 3할을 풀어달라는 요구였다.

우리는 이제부터 국내외 전방위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아야 유리한 이들이 누구인지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분단구조 속에서 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어둠의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순복한다면 K-피스는 한반도에 실현되고 전 세계에 증거될 것이다.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남북상생본부장, (사)뉴코리아 대표

*이 칼럼은 <기독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