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삼일운동과 2019년 불매운동(19. 08. 27)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은 러일전쟁 이후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묵인했던 미국과 일본의 비밀각서이다. 동년 이뤄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은 이러한 밀약의 연장선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에 항거한 1919년 3.1 만세운동은 민족자주와 평화평등, 주권재민을 표방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이념이자 조선 봉건사회와의 결별을 고하는 선언이었다. 이는 민족자결권을 천명한 1943년 카이로선언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시민불복종의 효시가 되었다.

미국의 초국가적 패권에 편승한 일본은 최근 정확히 미국의 대중 무역제재 시기에 맞추어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현 시점에서 ‘제2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생각해 본다. 영토전쟁이 무역전쟁으로 뒤바뀐 21세기, 지경학(地經學)적 관점에서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경제블록화를 토대로 중국의 일대일로와 경제팽창에 대항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의존도는 점차 심화되고 있는 반면, 대미·대일 무역의존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어느덧 한일의 경제격차는 1965년 한일수교 당시 30배에서 1/3수준까지 좁아졌다. 과거 미국이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일본의 조선반도 점령을 용인했던 것처럼 중국경제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경제는 중국보다 일본경제 속에 편입되는 것이 유리하다. 일본 또한 전범국, 패전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미국과 태평양을 공유하는 대등한 동맹국가로 나아가길 희망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조치에 대항하여 국내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주권강탈에 대한 민족적 항거인 1919년 삼일운동과 유사하게 2019년 불매운동은 경제침략에 대한 민초들의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 불매운동의 확산이 과연 일본 군국주의 청산, 나아가 일본의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물론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된 일극체제 하에서는 일본제품 불매가 쉽지 않다는 회의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일간의 객관적인 국력차이는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불매운동의 성공가능성을 매우 높게 본다. 불매운동은‘정부 대 정부’가 아닌‘일본 정부와 한국 시민사회’의 구도라는 점에서 한일간의 국력차와 상호주의라는 외교적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은 국내문제가 아닌 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되는 국제이슈라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1919년 삼일운동이 국제사회에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점은 이 운동이 철저히 자주평화, 민족자결이라는 국제보편주의 정신에 입각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9년 불매운동 또한 WTO체제와 자유무역주의를 존중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일본의 우경화와 신군국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국제사회에 큰 호소력을 얻어낼 수 있다. 이는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 일본 내 건전한 여론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일본 정부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 국제사회의 여론이다.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번져간다면 일본 정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1919년 구한말과 비교해 현재는 눈부신 교통과 통신의 발달, 다국적 기업과, 국제 NGO의 등장으로 국제여론 형성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점은 2019년 불매운동이 1919년 삼일운동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1919년 삼일운동과 2019년 불매운동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지만 그 구조면에서는 아직도 많은 점들이 유사하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역사에서 큰 교훈을 얻게 된다.

이장한/ 뉴코리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