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껴안아야 하는 것들(19. 07. 23)

아버지가 되고 나니, 자녀들이 잘못할 때 그 잘못이 금방 눈에 보입니다. 변호사가 되고 나니 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불의와 불법에 대해 민감해집니다. 문제는, 자녀들의 잘못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불의와 불법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강하게 권면하고 비판하고 꾸짖고 때로는 처벌도 받게 해야 하겠는데, 이때마다 ‘도대체 나의 목적과 의도가 무엇이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바꾸어 보려고 나름 애정을 가지고 꾸짖어도 보고 달래도 보지만, 저의 목적과 의도와는 달리 자꾸 삐뚤어지는 것만 같은 결과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뀌니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사고가 다르고, 그러한 시대풍조 속에서 너무나 쉽게 상대주의로 도피하려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타인을 비판하려다 보면 저 자신도 부족한 사람이니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복음 6:42)는 말씀에 양심이 찔릴 때가 많고, 예수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랑’이시니,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공의’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더 핵심이 아니겠느냐며 주춤거리기도 합니다. 저 자신이 이처럼 부족해도, 그래도 비교적 사람과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해야 할 말은 조금씩 하고 사는 편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들 말을 못하게 되면,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불의와 불법이 횡행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 젊은 분들과 만나서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북한체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가 무척 궁금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평화통일을 말하면서 북한체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판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제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의 정치경제적 체제를 놓고 선택하라면, 기독교인인 저는 아무래도 사회민주주의 혹은 공동체적 민주주의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는 물론이고 사회주의에도 반감(反感)이 큰 저이지만, 인본주의적인 바탕 위에 세워진 개인주의(個人主義)적, 각자도생(各自圖生)적인 자유민주주의보다는, 그래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왜 인간(人間)이라고 부르는지를 잘 아는 공동체적 민주주의, 기독교적 사회민주주의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체제를 동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체제를 생각해 보면, 뭔가 바꾸고 변혁시키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특히나, 현재의 분단체제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남북한의 주민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선한 목적과 의지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화와 나눔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남쪽에 있는 우리 대한민국도 변혁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흡수통일을 이야기하는 모양이지만, 3만 명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태도를 보거나 경제적인 수준과 포용력을 고려하더라도, 남쪽은 북쪽을 흡수 통일할 자격도 역량도 없습니다. 평화도 통일도 상대방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만 생각하면 평화도 통일도 없으니까요.

어떤 이들은 “평화냐, 통일이냐?” 선후를 놓고 다투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평화적인 통일, 통일을 통한 평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상유지를 본질로 하는 가짜 평화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이 땅 위에 실현하려면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통일로 나아가되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방식이 시간은 더 걸릴지 모르나, 평화를 통한 남북통일은 결국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아니 세계의 평화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파도 껴안아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설혹 북한체제나 북한의 권력자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함께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 나갈 당사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북한체제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체제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전에 남과 남은 과연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더욱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6·25전쟁을 통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서로의 삶을 파괴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같은 핏줄, 형제자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도 더 지났음에도 아직도 마음속에 고통과 분노와 미움과 증오가 남아 있더라도, 아무리 아파도 껴안고 나아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평화를 위한다면 전쟁에도 대비해야 하겠지만, 이제는 적(敵)이 아니라 동포(同胞)로 맞이할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저 또한 아파도 싫어도 껴안아야 할 것에 대해 묵상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겠습니다.

박종운/ 변호사, 사단법인 평화통일연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