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아픈 기억, 용서와 화해는 가능한가(19. 06. 25)

해방 직후 일본군 해산을 명목으로 한반도에 진입한 소련군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남하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그은 38선. 모스크바 3상 결의안(신탁통치안)에 대한 ‘찬탁’과 ‘반탁’으로 좌익과 우익이 갈려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유엔으로 이관된 한반도 문제. 유엔 감시 하의 남북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수립 제안 거부로 1948년 8월 15일 남쪽에서 단독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와 9월 9일 뒤따라 설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과 소련 군정 하에서 출범한 남북의 정부는 냉전 질서가 한창 구축되던 시기 동서 냉전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이후 냉전 체제 속에서의 국가들이 그랬듯 남북도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였고 적대적 증오심마저 키우게 됐다.

민족상잔의 뼈아픈 전쟁은 북에 의한 침략 전쟁이었다. 전쟁을 놓고 학계에서는 한때 소련의 지시였다거나 미국에 의한 유인책이었다는 외인론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1992년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우리 정부에 전달한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이미 전쟁 발발 1년 3개월 전 스탈린에게 무력 통일 의사를 밝혔으며 모택동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아마도 김일성은 북쪽에서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으로 전 인민의 지지를 얻은 후,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반도 전역에서의 혁명을 꿈꾸었을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제국주의자를 몰아내고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어 대접받는 세상. 그 분명한 비전이 친일파로 낙인찍힌 이들에게는 공포였지만, 소작농이나 노역으로 고생하던 이들에게는 해방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북은 한국전쟁에 대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조국을 수호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논리는 단순하다. 미군이 주둔하는 남쪽은 식민지나 다름없는데, 이는 ‘남조선 혁명’을 통한 국토완정(國土完定)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는 통일론을 펼쳤던 배경이기도 했다.

한편, 전쟁 기간 평양을 비롯한 원산, 신의주, 청진, 흥남, 사리원 등 주요 도시들에 퍼부어진 폭격은 위력적이었다. 미군이 3년 동안 쓴 폭탄의 양은 63만5000톤으로 태평양전쟁 때 사용한 50만3000톤보다 많았다. 태평양과 비교하면 수십 배 좁은 한반도 내에서 엄청난 양이 쓰였으니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북이 휴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 27일을 전승기념일로 선전하는 데에는 가공할 만한 폭격에도 굴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작용했을 법하다.

한국전쟁은 이념에 따른 정파를 남북으로 분절시켰다. 북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면 남에서는 통합진보당 같은 정당이 강제로 해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념에 천착된 색깔론은 정치 문화를 아예 불구로 만들었다. 북에서는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마르크스-레닌 사상’을 대체하면서 애초에 노동자, 농민 중시의 인민민주주의가 퇴락했다.

남은 이미 북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여전히 적화통일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 공산당이 공개적으로 활약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편이다. 이젠 1989년 12월 냉전의 종주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탈냉전을 선언한 후 1990년 소련에 이어 1992년 중국과 수교한 우리가 반공의식을 초월하고 역사 선도성을 발휘할 때가 왔다.

남과 북은 이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이어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2000년과 2007년, 2018년 4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종전을 선언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는 ‘상호체제 인정과 존중, 내정 불간섭’ 조항을 두어 남북 화해의 첫 단추가 무엇인지 잘 규정했다. 상대방 체제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멈추고 상대를 파괴하거나 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부연되어 있다. 1991년 9월에는 남과 북의 유엔 동시 가입이 성사됐고, 국제사회 속에서 남북은 독립적인 국가로 활약해오고 있다.

어느덧 국제 냉전질서를 구축했던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9년이 됐다. 탈냉전 선언 이후로도 30년이 흘렀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국제사회는 냉철하게 국가 이해관계를 목적으로 작동한다. 남과 북이 이미 합의한 ‘사실상의 종전’ 상황을 개진해나갈 때 ‘핵과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 실현에 우리 민족의 이해를 내세울 수 있다.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을 잊을 수는 없다. 전쟁에 대한 책임도 묻고 싶고 사과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국들의 경쟁이 더욱 첨예화되기 전에 우리 민족의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원수를 친구로 만들 수 있는 화해는 힘이 세다. 예수님께 충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미 성경 속에 답은 제시되어 있다.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이 칼럼은 <기독신문>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