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교회 때문에 일어났다?(19. 06. 11)

한반도 현대사에 있어서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난 원인으로 제일 많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김일성 정권의 적화통일 야욕 때문이라는 것이고, 그 다음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날로 대결이 심해지던 동서 이데올로기가 한반도에서 충돌한 것이라는 것이다. 맞는 대답들이다.

1980년대에 ‘6․25전쟁은 교회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셨는데 교회는 마땅히 감사와 회개와 용서와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는 교회의 암흑기였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물러가고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려야 했을 것이다.

교회는 일제강점기 말에 신앙의 절개를 꺾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신사참배이고, 그 밖에도 교회당을 팔아 전투기를 사 바친 애국기 헌납사건 등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때를 ‘훼절기’(毁節期)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깊이 회개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회개가 행해지고, 용서가 뒤따르고, 화해를 이뤘어야 한다. 이것이 해방 후 한국교회가 보여주었어야 할 바른 모습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교회는 그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히틀러 치하에서 옥고를 치른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ὃller) 목사가 1948년 8월, 트라이자(Treysa)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우리 교회는 가슴을 치며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죄, 나의 죄, 너무나 큰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한 일이나, 또 다른 니묄러(Wilhelm Niemὃller) 목사가 1962년의 한 강연에서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로 시작되는 다니엘의 처절한 회개기도(단 9장)를 중심에 놓은 것이 대표적인 본보기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해방 이후, 교회에는 정죄와 변명이 난무했다. 무엇보다도 분열이 심했다. 전에는 해외의 신학자 가운데 ‘한국교회를 보면 20세기 안에 세계가 복음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해방 후에는 ‘교회가 어느 정도까지 분열할 수 있는지 알려면 한국교회를 보라’는 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사랑의 채찍을 든 것이 6․25전쟁이라는 것이다. 김재준 박사도 6․25전쟁을 ‘심한 징계’라고 하였다. ‘6․25는 교회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해방 뒤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면 또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다.

6․25전쟁은 주일 새벽에 일어났다. 휴일에는 긴장이 풀어지고 방심하기 쉬운 것을 노린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이 있다. 교회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교회의 성일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교회는 6․25전쟁 중에도 지도자들이 서울 사수를 결의해 놓고 형편이 급해지자 보따리를 싼 일, 서울 수복 뒤에 도강파와 재경파(잔류파)로 나뉘어서 다툰 일, 교역자들을 제주도 등지로 수송할 때 부산 부두에서 벌어진 추태 등 부끄러운 모습이 많았다. 1950년 7월 10일 YMCA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인민군 환영대회가 열렸는데 장병욱 목사는 이 날을 “한국교회 사상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고 적었다.

내년은 6․25 발발 70년이 된다. ‘우리 탓입니다!’ 하는 회개의 파도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 회개가 깊이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