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환철] 정쟁의 대상이 되어도 좋다

   
흔히, 남북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순간도 없었다. 그러니, 그 허구는 이제 그만 쓰면 좋겠다. 사실 정쟁의 내용이 문제 아닌가.
똑같은 일을 두고 저편이 했을 때는 악에 가깝게, 이편이 했을 때는 선에 가깝게 말하는 낯뜨거운 정쟁 말고, 요즘 국정원처럼 다른 일로 궁지에 몰리자 남북문제 끌어들이는 꼼수도 말고, 오직 누가 더 나은 결과물을 생산하고 있는가를 두고 정치적 쟁론이 벌어지면 좋겠다.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유치한 논쟁이 잊을만하면 재연되고 있다. 박정희로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역대 모든 대통령은 북한에 선물을 제공하거나 서로 교환했고, 친서나 외교문서를 정중한 예의를 갖춰 주고받았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국제 혹은 그에 준하는 체제들 간의 외교적 예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남북 간에는 통일이든 화해든, 적대와 대결 위주의 현 제도를 뛰어넘어야 하기에 상호 양보할 것과 타협할 것을 제한 없이 논할 재량이 최고책임자에게는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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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이 빈곤해 보이는 어떤 인사가 정대세 선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정대세 선수의 선조들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떠나 일본에 건너간 것이고, 이후에 분단된 고국이 남북 간에 택일을 강요했다. 특히, 일본의 조선 학교는 북한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세우고 후원했기에, 정서적 국적과 호적상 국적이 불일치하거나 양립하는 정대세 같은 ‘경계인’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자기가 정서적으로 ‘조국’이라고 생각했던 북한에게서 한 차례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 그는 나고 자란 일본에서 설움받고, 자신이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북한에서 거절당하고, 이제 호적상 조국에서 고발당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통합된 나라를 유지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 하기는 커녕, 이미 많은 고통을 겪은 그를 고발하고 괴롭히는 것은 한 인간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
유사한 처지의 수많은 ‘경계인’들을 간과하고, 정대세만을 고발한 것은 결국 ‘정쟁’을 위한 목적 외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이런 정쟁은 경계인들의 고통을 더하면서 고발하는 자 혹은 그 고발에 동조하는 무리들의 수준낮고 더러운 이(利)를 탐하는 것이다.
정쟁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 자기 정파의 치세에 남북 간 대결은 얼마나 줄어들었고, 협력은 얼마나 늘었으며 한반도 거민들의 인권과 자유가 얼마나 증진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방향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연하고 논쟁하라는 말이다. 대중들의 기억력과 정보력 한계를 악용하거나, 안 그래도 눈물 많은 경계인들을 할퀴는 정쟁은 그런 정치와 시민사회를 공유한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고 통일을 멀리 걷어차 버리는 악행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