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 한반도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확실시 되어가고 있다.
이 글이 발표된 시점에는 핵실험이 이미 실행됐을 지도 모른다.
이 글의 논지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변해서는 안 될 한반도의 안보원칙에 관한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요구에 부응하길 원하는 마음은 필자 역시 간절하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태도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서 동북아의 평화유지를 위해 지금 작동을 멈추고 있는 남북당사국과 미.일.중.러가 참여하는 6자회담의 전략적 유연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가 말하는 전략적 유연성이란 결과를 이끌어내는 회담전략을 말한다. 수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회담실패의 원인을 특정국가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책임 있는 회담자의 정신이 아니다. 회담당사자들의 인내와 지혜와 분발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회담의 진행과정은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회담자로서의 인격 등 다양한 전술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회담당사자들이 지켜야할 절대기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대한민국 정부와 모든 국민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전쟁방지는 절대선이요, 절대목표다.
물론 이러한 원칙을 상대가 안다면 회담이 매우 불리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당사자는 이상과 같은 전제에 합의해야 한다.
혹자는 북한을 모르는 유아적 순진성이라고 일갈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말이야 어떻게 하든 그들도 전쟁카드를 선택하는 것은 마지막 카드임을 직시해야 한다. 어차피 망하는 판인데 전쟁이나 하고 죽자. 이때가 북한이 전쟁카드를 쓸 시간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이 전쟁카드를 꺼낼 시간은 말로(외교적으로) 하는데 까지 해보고 안 되면 무력사용도 불사한다. 이것이 미국의 기본전략이기 때문에 논리적 입장에서 보면 전쟁카드를 먼저 꺼낼 나라가 북한보다는 미국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핵외교 과정에서 한국이 너무 허둥대고 있다는 생각을 져버릴 수 없다. 우리는 북한 당국과 북한 주민들을 자극하는 언행을 삼가고 냉혹한 국제현실을 직시하며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쟁의 파고가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갖겠다든가 국내 여론을 정권에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부질없고 위험한 행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북한정권의 붕괴를 위해 북한 주민들이 궐기하도록 선동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것은 서구 민주주의 역사를 설명할 때나 통용되는 이론이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인민들이 궐기하면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인가를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북한의 민주화는 점진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서구민주화의 역사가 북한민주화의 모델일 수 없다는 것은 민족양심의 당연한 결론이다.

셋째, 북한 정권의 신속한 붕괴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대안 없는 북한 정권의 붕괴는 더 큰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혹자는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엄격히 구별하고 남한의 대북정책은 북한주민의 행복증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번 천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마치 피를 흘리지 말고 살만 떼어 내는 일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대북정책은 북한 주민의 행복증진에 초점을 두되 북한당국과의 인위적 분리가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고 북한에 대한 통합적 화해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가야 한다. 남과 북은 상호 협력과 번영을 통해 평화적 공존, 평화적 통일의 길로 나가야 한다.
국가정체성의 차이를 통일한국이라는 큰 꿈을 바라보며 인내와 겸손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큰 꿈을 가지고 민족의 통합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정도를 걷는다면 반드시 평화의 대로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