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로켓, 핵 문제와 진영논리




어릴 때 핵실험 반대 시위에 동원된 적이 있다. 그 때는 핵실험 자체가 인류에 위험하다는 인식보다는 소련 중국 등 공산진영에서 핵실험을 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그래서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핵실험을 한다고 해서 시위에 나선 적은 없다.
이렇게 시작된, 객관적 입장과 진영논리 간의 갈등은 점차 사고(思考)의 중립성을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고는 이해관계나 피아(彼我)의 진영논리를 초월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비슷한 현상을 맞으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남북에서 쏘아올린 로켓이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그들의 말대로라면 "지난해 12월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3호의 2호기를 운반 로켓인 은하 3호에 실어 발사"했고, 한국은 올 1월에 ‘나로호(KSLV-I)'라는 우주발사체를 이용하여 100kg급의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켰다. 우주를 향해 쏘아올린 두 로켓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달랐다. 우주를 향해 발사한 로켓이 한국의 것은 우주발사체고, 북한의 것은, 국정원 분석에 의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것이다. 두 로켓을 그렇게 정의한 데 대해서 시비할 능력도 없고 위치도 아니다. 문제는 진영논리를 제거한 보편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그럴까. 진영논리를 떠나면, 두 로켓은 우주 공간에서 계속 돌리면 인공위성이 되고, 목표 지점에 떨어뜨리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면, 두 로켓에 대한 지금의 평가는 엄밀한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남북은 사물을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적대적 시각에서 봐 왔다. 그 시각으로써는 같은 사물을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 북한핵 문제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북한핵을 비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북한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기보다는 핵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가 핵을 갖겠다는 것도 분명히 반대한다. 역시 핵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나는 중국과 러시아의 핵도 반대하지만 미국과 영국 등의 핵도 반대한다. 먼저 핵에 대한 관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핵을 갖지 못해서 핵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진영논리가 아니라 핵이기 때문에, 그것이 인류와 자연과 환경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 핵 해결을 위한 접근 논리도 이같은 입지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핵보유국이 취해왔던 진영논리를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핵보유국은 핵에 대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핵을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으려는 자세를 고수해 왔다. 이른 바 핵확산 방지다. 이것으로써는 핵 개발의 유혹을 막을 수 없다. 그 방안은 핵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공정한 룰이 될 수 없다. 또 전 지구적인 생존을 대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핵소유 여부와 그 이해관계를 초월한 관점에 서야만 핵 문제를 공정하게 다룰 수 있고, 전 지구를 살리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결국 핵을 지구상에서 ‘모두’ 제거하자는 논의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거의 20년 전에 백범강좌에서 한국의 원자력 전문가를 모시고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강연 끝에 이런 질문을 했다. 핵을 개발하려는 국가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려고 하면서도 핵보유국이 먼저 취해야 할 핵폐기 조치에는 왜 소홀한 지, 핵보유국이 먼저 핵을 폐기함으로써 핵 개발의 유혹을 봉쇄하는 관점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관심한가 하는 것이었다. 핵 개발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려면 바로 핵보유국도 핵이 인류에 위험하다는 관점에 서서 자기의 핵을 파기하는 의지를 행동화함으로써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핵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이다. 진영에 관계없이, 핵을 갖는 것은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 때문에 북한 핵 문제도 NPT 체제를 넘어서는, 지구상의 핵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인류 공동의 과제에서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