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성]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여러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진실들이 너무나 불편한 나머지 모른 척, 못 본 척 하며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 불편한 진실들과 맞서서 부당한 힘이 나를 바꾸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꿈틀거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웃은 춥고 배고파하는데, 무관심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은 이웃의 고통이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평화의 땅,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 군사기지 건설로 수천 수 만년의 세월을 품은 ‘구럼비 바위’가 깨어지는 소식은 정말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신혼여행의 달콤함을 제주 섬에서 보냈던 나는 몇몇 청년들과 올레 길을 걸으며 겹쳐지는 생각의 날개 짓에 쓴 웃음을 보내고 주먹도 불끈 쥐어 보았습니다.





서대문에 위치한 독립문에 새겨진 "독립문"이라는 글씨가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는데 앞장서온 이완용이 쓴 것-<동아일보> 1924년 7월 15일자 신문보도-이라는 것은 몸을 떨게 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독립문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돈을 후원했고, 위원장으로 사업을 주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것이 참다운 우리 민족의 독립을 추구했던 것이었을까요?
시대의 양심, 민주화의 큰 별이신 김근태님께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2011년 12월 30일 64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문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인한 병때문에 따님의 결혼식마저도 참석하지 못하는 참담함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는 그의 부서지는 몸을 통해 꽃 피웠습니다. ‘고문전문가' 이근안씨는 그를 국가 전복의 빨갱이라며 물고문과 전기고문, 인간을 짐승처럼 발가벗기고 콘크리트 바닥에 때려눕히며 치욕적인 모멸을 주었던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었습니다. '고문은 예술'이라는 말을 하였던 이근안씨는 지난 2008년, 70세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아 우리의 가슴을 철렁케 하였습니다. 목사 안수를 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총회는 그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 보다 더 큰(?) 은혜로 신분 세탁의 증명서를 주었습니다. 그는 목사의 신분으로 각종 집회의 간증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간첩'들을 잡아야 한다거나, ‘무상급식'은 나라를 끝장내는 것이라며 공안 수사관에서 공안 목사로 변신했습니다. 자칭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그가 고 김근태님의 빈소를 찾지 않았던 것은 그가 말한 회개와 목사라는 사실이 불편한 것을 넘어섭니다.
나에게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분단의 비극적 사실만큼 ‘불편한 진실'은 없습니다. 분단을 이용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지키는 자들이 버젓이 힘과 부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경제를 중시한다는 정부가 남북의 긴장을 부추기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호기는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분단의 틀을 견고하게 하면 할수록 많은 것들은 억압되고 왜곡된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분단은 도덕적 판단과 상식과 보편적 기준을 의미 없게 하며 너와 나를 쉽게 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정말 분단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살 수밖에 없는 건가요?
예수그리스도는 당시의 종교, 사회에서 난무한 왜곡되고 잘못된 진실들 앞에서 삶으로 저항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부활로 ‘평화의 복음'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2012년 우리에게 있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복음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