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 한국교회의 과제




1) 화해의 영성 회복

남북한 사회와 주민들 사이에 높게 쌓여 있는 적대감과 두려움, 원망의 감정을 서로 화해하는 작업이 첫 번째 해야할 과제다. 분단을 상징하는 휴전선, 전쟁의 적대감의 현장이다. 그것은 6.25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남북한은 전쟁으로 엄청난 두려움과 적개심을 쌓아 왔다. 남북한은 전쟁을 통해 200만명의 인명살상을 초래했다. 남한 82~85만명, 북한 120만명의 직접적인 인적 손실을 입었다. 이 인명살상 과정에서 남북한 주민들은 전쟁의 강렬한 체험을 하였으며, 원한과 분노, 적개심을 내면화하였다. 특히 북한은 전쟁의 체험을 통해 집단적 자폐현상을 보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역자립체제로 나타났다.



즉 전국을 210여 지역으로 세포처럼 분할하고 그 단위에서 자급자족하는 형태의 체제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발생하여 보급로가 차단되더라도 지역적으로 생존하며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회구조를 전쟁의 피해자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전쟁의 피해자들은 이른바 북한식 보훈정책으로 우대하며 전사자·피살자에 대한 성분정책을 실시한 결과 이들은 현재 북한의 기득권층,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사회의 지도세력을 구성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적대의식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남북통일이나 통합과정에서 심각한 갈등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휴전선으로 상징되는 분단이 단지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미움, 증오, 적개심, 두려움 등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죄의 문제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남북한 민족이 분단으로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대결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너희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철저히 보응해야 한다고 가르치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게 되리라”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요 17:11), 할수 있거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신명기, 잠언)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을 하나로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분열, 대립의 역사현장에서 화해와 용서, 통일과 하나됨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화해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2) 인도적 지원과 전문인선교

화해의 구체적 행동으로 물질적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데올로기 분단이 지속되면서 휴머니즘조차 이념에 압도당했다.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동포!”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도와주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남한 자본주의 체제가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이겼다는 체제논리를 학습하였다. 다행히도 북한의 식량난이 악화된 때에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북한주민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육아원, 병원, 학교, 농장, 공장 등의 시설을 지원하고 취약계층과 유아들을 지원하는 NGO 활동에서 교회는 단연 선도적이다. 북한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남조선’에 대한 부정적 생각, 즉 남조선은 돈만 아는 사회,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윤리도덕이 파괴된 사회라는 편견과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인도주의 지원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북한주민들 사이에 깊이 학습되어 있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인도주의 지원을 통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일반주민들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반종교 학습을 받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민족의 반역자,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한데,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긍정적 인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남북간에 합법적으로 열려 있는 인도주의 지원사업을 통해 사역현장을 확보해야 한다. “사회개발” 차원에서 개발과 선교를 접목해야 한다. 북한지역의 종합적 사회개발은 국가차원에서 수립해야 할 문제이지만, 디아코니아 선교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군?구역별로 자력갱생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체제의 특성을 활용하여 지역단위로 애향산업 및 교육·의료 개발프로잭트를 추진하면 매우 효율적일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차별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은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개선함으로써 복음전도의 가능성을 높이는 좋은 전략이다. 9개 도와 개성, 남포, 나진선봉 등 12개 지역에 복지시설과 예배처소를 함께 갖춘 복지센터형 교회건축을 추진할 수도 있다.

3) 북한교회 회복과 부흥
현재 북한의 교회는 공인교회, 지하교회, 그루터기 공동체로 구분된다. 해방당시 북쪽 30만, 남쪽 12만 기독교인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 북한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520여 가정예배소 및 전국에 1만 3천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의 교회는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북한당국이 허용하는 공인교회다. 북한당국에 의해 동원되는 신자들로 이루어져 ‘가짜’라는 평판을 듣기도 하지만,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동원되는 신자들이 과거 기독교인 가족들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이들의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신앙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교류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식량난 이후 중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후 북한으로 돌아가 예배모임을 지속하고 있는 지하교회다. 이들은 비밀스럽지만 활동적인 집단으로 외부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들이다. 적게는 2천명에서 많게는 20만명 선으로 그 규모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북한의 국가보위부가 지하교회의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상태여서 문제가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는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공인교회가 국가의 통제를 받는 것과 비슷하게 지하교회 역시 정보부의 통제 하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하교회의 활동을 통해 직접 복음이 전해지고 있고, 지하교회를 통해 나타날 역사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셋째는 과거 기독교인 가족들로 존재하는 그루터기 공동체다. 과거 30만명의 기독교인 중 현재 약 7만 명 정도가 그루터기로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50만명 혹은 70만명까지도 그 가족들의 규모를 추정하기도 한다. 이들은 신앙의 내용이 거의 없고 주기도문이나 유명한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정도에 불과하며 자녀들에게도 신앙의 교리보다는 기독교 집안이라는 전통을 확인시켜 주기에 급급한 정도이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거나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등 과거 기독교인들이 지녔던 윤리도덕적 생활과 신앙인 가족간 결혼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세 유형의 북한교회가 모두 든든한 북한교회로 회복되고 하나로 연합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4) 탈북자의 돌봄과 신앙생활
통일은 궁극적으로 북한주민들이 남한을 선택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주민의 일부분인 탈북자들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함으로써 북한내부의 주민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탈북자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탈북자 선교를 내실 있게 준비해 나가야 한다. 탈북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통해 북한내지의 가족, 친척들과 네트워킹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원이다. 탈북자들과의 사역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고 북한사람들을 복음화하는 실제적인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 사역은 한국교회가 선교적 차원에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