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홍] 홀쭉한 교회이어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나를 따르라!’의 명령에 제자들은 순종하며 따랐을 뿐이었다.
양자 간 다른 협약도 그 어떤 조건도 묻지 않았고 있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렸고, 집과 전답을 버렸으며, 심지어 가정을 버리고 그들 인생의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님만 따랐다. 다르게는 예수님은 그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를 때도 다르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갈대아 우르를 훨훨 떠나야만 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져야만 했던 나그네와 외국인으로서의 그 라이프스타일은 오늘 여러 가지로 문제 많은 한국 장로교회가 주님의 소명을 따를 때 지녀야 할 삶의 모습임이 틀림없다.



2천년 교회사에서도 진정으로 주를 따르는 자들의 자세는, 교회의 갱신을 위해서도 하나같이 강조되었는데 한 마디로 청빈이었다. 곧 가난한 자로 주를 따랐다는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주를 따를 때 영적으로 가장 홀가분한 상태, 주의 일을 할 때 걸릴 것이 없는 상태, 영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몸가짐을 의미한다 하겠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데, 물질, 명예, 쾌락 그리고 권력에로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사람들도 거룩하기를 원하시는(레11:44-45; 벧전1:16)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살기보다는, 속물 권하는 세상에서 그 세상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채 속물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로서 바른 길을 가려면 자신을 바로 지켜 먼저 세속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뿐 아니라, 진정한 제자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한국 교회는 제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없는데,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가진 너무 많은 것들이 가야 할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의 슬림화는 영적 갱신의 전제라 하겠다. 교회의 슬림화란 바로 교회가 청빈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으로 영적 갱신을 위해 요구되는 전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출발하기 전 40일 주야로 금식하며 성령에 이끌려 사막에서 금식하며 기도에 전념하셨다.(마4:1-11; 막1:12-13; 눅4:1-13) 마귀는 예수님을 물질,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시험했으나, 예수님은 간교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예수님은 세상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켰으며,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가장 홀가분한 상태, 사역을 위한 최상의 상태, 가장 가난한 상태로 비로소 공생애를 시작하였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비로소 입을 열어 전파하셨으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마4:17)였으며, 산상수훈 8복 중 첫 번째 복으로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눅6:20)임을 선포했다. 사실 한국교회의 초창기 역사를 보면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초대교회적 순수성을 가진 모습으로 시작하였고,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1960년대 이후 급작스런 경제부흥과 함께 양적 교회성장을 누리면서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세상을 좇는 모습은 도를 넘어 급기야 존경은커녕 세상의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 순수하고 홀쭉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의 복귀가 21세기 한국교회를 바람직한 상태로 이끌어 줄 것이다. 보다 가난해지고, 작아지고, 순수하고, 몸집을 줄여갈 때 한국 장로교회는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기꺼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유혹의 사탄을 대적한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 한국교회에게 중요한 지침이 된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11)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교회로 한국교회가 거듭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의 진정한 일군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남북의 분단을 극복하는 일에는 보통 어려운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통일을 향하여 아니 통일시대 한국교회에게 부여되는 과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터에 임하는 군인마냥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람직한 몸가짐이 전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홀쭉한 모습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과업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이 비만의 시대에 홀쭉한 교회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