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식] 두 팔 벌려 끌어안고




며칠있으면 6.25 전쟁 발발 62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6.25 전쟁은 남북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남북은 지금까지 서로에게 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주로 북한이 우리를 남침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우리 남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증오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한이 맺혀 있습니다. 북한을 향하여 무엇인가 가슴 안에 응어리가 져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에게 대한 감정이 같습니다. 사실 6.25 전쟁으로 초토화 된 것은 남한도 그렇지만 북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원산포격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남한 사람들을 향하여 원한이 많습니다. 증오를 불태워 왔습니다.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의 문제는 이 같은 증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적어도 증오의 문제는 성령의 화해의 사역으로서 해결되어질 수 있다는 실마리를 갖게 됩니다. 성령의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해를 통한 소통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연설할 때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각처에서 왔지만 모두 자기의 언어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새 말로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성령의 결과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두 팔 벌려 끌어 안을 수 있는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야곱과 에서가 서로 만나 두 팔 벌려 목을 껴안고 우는 모습은 바로 성령강림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령의 화해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남북한이 서로 팔을 벌려 끌어안고 지나온 증오의 세월을 생각하며 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기독교인들이 앞장 서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셔서 상대방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강림으로 출발한 공동체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날마다 일어나는 하나님 활동하시는 장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그리고 믿는 이들이 남북이 서로 두 팔을 벌려 끌어안는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앞장 서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원수졌다고 팔을 벌려 끌어안을 수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잠시만 생각해보면 다 똑같은 인생이 아닙니까? 서로 부족한 것 많고 서로 생각이 짧고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뭐 특별하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서로 두 팔 벌려 끌어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강림하며 우리가 변화되고 서로를 향해 두 팔 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웃을 향하여 그리고 남북이 서로를 향하여 두 팔을 벌릴 수 있는 성령의 역사가 한반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