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 보수와 진보가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



저는 어렸을 때부터 파란색을 좋아합니다. 파란색은 하늘의 색이고, 눈을 맑게 해줍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옷이나 넥타이 가운데는 파란색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라고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들을 파란색으로 획일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색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것이 파란색 하나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된장국을 즐겨 먹는 편입니다. 음식점에서 특별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대부분 된장국을 주문합니다. 저는 제가 된장국을 즐겨먹는다고 해서 동석한 다른 사람들도 된장국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음식에 대한 취향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들의 취향에 끼어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제가 먹는 된장국의 맛이 어떤가를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맛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가 창립되고, 1주년이 지났습니다. 한국교계의 보수인사들과 진보인사들이 함께 하는 평통기연에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일반적인 대립각이 극복되고, 평화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한목소리를 내며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 때 3.1절이나 8.15 광복절이 되면, 같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상반된 기념행사를 함으로써 기독교인 자신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혼란하게 했던 역사를 생각하면, 진일보한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흔히 일반인들 가운데 보수는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고, 진보는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경우 보수는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진보는 기독교 신앙의 관계성, 이웃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가치든,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과 관계성이든, 이 둘은 양자택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서로 견제하고 상호보완하고 함께 가야 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보수를 배제한 진보도, 진보를 배제한 보수도 사실은 서로를 빈약하게 할 뿐입니다.
저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가려면, 몇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고, 자기 자신과 상대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차이와 갈등을 상쇄하고도 남을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난 1년간 평통기연의 공동사무총장으로 심부름하면서 그 같은 덕목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작은 초석이라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