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복 ] 그래도 얍복강을 건너야 합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창33:4)
문득, 얍복강가에서 이루어졌던 야곱과 에서의 눈물겨운 상봉의 장면을 생각해 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고향을 떠난지 어느덧 20년. 결혼하여 대가족을 이루고,
대부호가 되었지만 야곱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앙금과도 같은 불안과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야곱에게 내리시는 것일까요?
고향에는 야곱을 원수처럼 여기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형 에서가 있는데,
왜 이렇게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은 야곱이 왜 형 에서를 만나야 되는지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형제가 만나는 일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무조건 만나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형을 만나야 하는 야곱의 마음은 복잡하고 불안했습니다.
형과 화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이 400명을 데리고 마중 나온다는 전갈을 받고
두려움이 극에 달합니다.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얍복강을 건너 형을 만납니다.
그리고 두 형제는 아무 말없이 서로 얼싸안고 입을 맞추며 울기 시작합니다.
20년 간의 갈등과 오해가 그 눈물과 함께 씻겨 나가는 순간입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북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냉각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전쟁의 위기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북의 관계가 악화될 소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군사훈련을 늘리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상봉행사가 취소되고, 남북간의 경제교류도 심각하게 제한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얍복강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얍복강을 통해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형제는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면 방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지금 남북이 만날 수 없는 이유들이 많이 있지만,
피를 나눈 형제로써 만나야 한다는 대의(大義)를 능가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만남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입니다. 앞으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될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불편하더라도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만나고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만나야 합니다.
야곱과 에서가 한 일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야곱의 마음을 번민케 하였던
모든 문제와 고민이 해결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신뢰가 전제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것이지만,
반대로 만남을 통해서 신뢰가 구축될 수 있습니다.
만남이 만능(萬能)은 아니지만, 분명 최선(最善)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앞에 건너고 싶지 않은 얍복강이 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실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얍복강을 건너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안아 주어야 할 가슴이 있고, 함께 흘려야 할 눈물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얍복강을 건너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