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화 ] 평화를 누리는 길


 
일제 식민지 시절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노래한
시인 이상화의 시 한편은 두고두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시는 이렇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봄은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고,
봄은 반드시 와야 한다는 당위성이고,
봄이 오면 생명이 있고 기쁨이 넘친다는 것이다.
자유와 독립이 봄이었고,
그 봄은 3.1절 선언에서는 만방에 미치는 "평화"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부터 2500여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로니아의 식민지 속에 살면서 자유와 독립을 원했다.
선지자 이사야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위로"의 약속을 전한다.
위로는 개인적 위로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개입으로 이루어지는 독립과 자유이다.
그 위로는 오늘의 용어를 빌면 "평화"이다.
평화는 가능하다. 평화는 필연성이다. 평화는 기쁨이다.
그런데 그런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평화가 오기 위한 <여건조성>이 필수적이다.
평화의 주님이 오실 <길닦기>를 하란다.
평평한 길을 닦아야 그길로 주님이 평화를 들고 오신단다.
높은 언덕은 허물고, 깊은 웅덩이는 메꾸고,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거친 길은 평평하게 다져야 한단다.
 
오늘을 우리가 살면서 한번 ?읗舫맛?: "갈라진 땅에도 봄은 오는가".
봄은 올 수 있다.
남북이 하면 된다.
봄은 와야 한다. 남북은 한 민족이다.
봄이 오면 남북은 행복하다. 아무리 추어도 봄은 꼭 오고야 마는데,
분단의 겨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길다는 생각이지만, 통일의 봄은 오고 있다.
혹 남북녁 각기에 분단을 즐기거나 분단 때문에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내심으로 저항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남녁과 북녁에 통일의 꽃은 만발한다. 한때나마 남북간의 해빙이 있었고
지금은 다기 결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통일의 봄은 오고 있다.
 
오늘 우리는 오고 있는 그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사야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지 않는가.
앞서 본대로 이사야의 처방(이사야 40:1~5)은 이렇다.
남북간의 이념, 사상, 경제, 제도, 생활 방식 등 언덕과 계곡처럼 격차가 크다.
예컨데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교류 협력은 작지만 보람 있는 길닦기의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구부러진 길과 험한 길은 남북 간에 널려 있다. 그런 현실은 북녁 자체에도 있다.
그리고 남녁사회 내에서도 "남남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개입을 통한 복음적 통일을 원한다면 이사야가 적시하는 "길닦기"에 기독교가 앞장서자.
이제 그 길닦기는 미.일.중.러.의 협력하에 닦야야 할 기로에 서있다.
임무와 보폭과 사고의 폭이 그만큼 커졌다.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는 더이상 않된다.
민족의 결연한 통일의지가 바탕이 되고, 이웃 주변국들과 함께 할 평화구도를 위한 승화된 개방성과
지혜를 풍성하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사야는 공언한다. 하나님의 "위로" 가 "만백성이 볼 수 있도록 영광스럽게"(5절) 임한다고.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영광스럽게 "곧" 이루어지리라고.
이제 길닦기에 나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