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개인적 위로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개입으로 이루어지는 독립과 자유이다. |
그 위로는 오늘의 용어를 빌면 "평화"이다. |
평화는 가능하다. 평화는 필연성이다. 평화는 기쁨이다. |
그런데 그런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
평화가 오기 위한 <여건조성>이 필수적이다. |
평화의 주님이 오실 <길닦기>를 하란다. |
평평한 길을 닦아야 그길로 주님이 평화를 들고 오신단다. |
높은 언덕은 허물고, 깊은 웅덩이는 메꾸고,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
거친 길은 평평하게 다져야 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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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우리가 살면서 한번 ?읗舫맛?: "갈라진 땅에도 봄은 오는가". |
봄은 올 수 있다. |
남북이 하면 된다. |
봄은 와야 한다. 남북은 한 민족이다. |
봄이 오면 남북은 행복하다. 아무리 추어도 봄은 꼭 오고야 마는데, |
분단의 겨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길다는 생각이지만, 통일의 봄은 오고 있다. |
혹 남북녁 각기에 분단을 즐기거나 분단 때문에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내심으로 저항할지 모르나 |
결국에는 남녁과 북녁에 통일의 꽃은 만발한다. 한때나마 남북간의 해빙이 있었고 |
지금은 다기 결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통일의 봄은 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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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오고 있는 그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
이사야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지 않는가. |
앞서 본대로 이사야의 처방(이사야 40:1~5)은 이렇다. |
남북간의 이념, 사상, 경제, 제도, 생활 방식 등 언덕과 계곡처럼 격차가 크다. |
예컨데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교류 협력은 작지만 보람 있는 길닦기의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
구부러진 길과 험한 길은 남북 간에 널려 있다. 그런 현실은 북녁 자체에도 있다. |
그리고 남녁사회 내에서도 "남남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
우리가 하나님의 개입을 통한 복음적 통일을 원한다면 이사야가 적시하는 "길닦기"에 기독교가 앞장서자. |
이제 그 길닦기는 미.일.중.러.의 협력하에 닦야야 할 기로에 서있다. |
임무와 보폭과 사고의 폭이 그만큼 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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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개구리 식으로는 더이상 않된다. |
민족의 결연한 통일의지가 바탕이 되고, 이웃 주변국들과 함께 할 평화구도를 위한 승화된 개방성과 |
지혜를 풍성하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
이사야는 공언한다. 하나님의 "위로" 가 "만백성이 볼 수 있도록 영광스럽게"(5절) 임한다고. |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영광스럽게 "곧" 이루어지리라고. |
이제 길닦기에 나서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