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자연 ] 다리를 놓아야 건널 수 있다


치약 때문에 이혼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성격이 무척 꼼꼼해서 치약을 쓸 때면 끝에서부터
눌러 썼다. 그러나 아내는 성격이 낙천적이고 덜렁대는 편이어서
치약을 아무렇게나 쓰고 내팽게쳤다.
이때문에 이 부부는 늘 투덜대며 다투다가
어느날 심하게 싸우고 헤어졌다.
이 사건은 인간관계의 파국이 인생의 파국임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생의 모든 것이다.

인간관계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고 인간관계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척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혈기 왕성하고 성급한 베드로, 주님으로부터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으리만치
활화산 같은 성격의 소유자 요한과 야고보, 그런가하면 타산적인 빌립과 의심 많던 도마,
광적인 테러리스트로서 로마에 항거하던 셀롯인 시몬, 그리고 은 30량에 예수를 팔아먹은 가롯 유다,
이들은 모두 참으로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주님은 그들을 모두 감싸 안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본다. 우리 주변에는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매우 타산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이 있다. 격렬한 성품과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사고 때문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확실히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래서 싫다고 골라내고 저래서 싫다고 골라내면 내 주변에 남는 사람이 없다.
주님의 말씀처럼 가라지는 뽑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요셉은 시기와 질투가 많으며 매사에 불평과 원망이 많던 형들과 함께 해야 했고
그로 인하여 끝내는 애굽의 노예 생활과 감옥생활을 경험했어야 했음에도 그는 그 형들과 함께 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위대성이다. 사람들을 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을 품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관계야말로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좋은 인간관계는 좋은 인생을 보장한다. 좋은 친구와 좋은 이웃을 생기게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
영국 속담처럼 다리를 놓아야 강을 건널 수 있다.
이처럼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처럼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주님처럼 넓은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기도로 이루어진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이야기한다.
사람 때문에 낙담하고 상처받은 마음, 분노로 일그러진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냄으로써 먼저 치유 받는다.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얻어진 영적인 힘은 인생을 사는 힘이 된다.
도저히 포용할수 없는 사람을 포용하게 되고 감쌀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을 감쌀 수 있게 된다.
기도는 그래서 하는 것이다.
“에머슨” 이 말한 것처럼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행복을 더해 주는 사람이 되자.
나아가 북한동포들까지 감싸고 함께하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 되자.
 
- 길자연 칼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