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복 ] 공감의 힘


지난 2월 15일,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는 정기총회를 열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순수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국민과 국제사회에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남한과 국제지원 단절,
그리고 한파로 말미암아 북한동포들은 1990년대 후반기의
고난의 행군 때와 같은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은 열악한 난방시설, 넉넉지 못한 땔감과
부족한 식량 및 의약품 등으로 북한 전역에
凍死(동사)자가 나오고, 설상가상으로 구제역까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늦었지만 2월 중,

겨울이 가기 전에 영·유아와 어린이용 내복을 모아 북쪽에 보내려고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안하다, 힘내라 애들아" 라고 말하며, 남쪽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고
정말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지만 지원의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굶주림과 강추위에 극심하게 고통당하는 아이들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이들 중에는 신앙인들이 많을 터인데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과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가 의심하게 되는 증거는 아닐런지요.
 
영국의 종교학자 케렌 암스트롱은 그녀의 책 “마음의 진보’에서
모든 종교는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전하며 그것은 “공감을 통하여 남의 아픔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합니다. 또 “공감은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로 서있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35-38에 예수사역의 본질이 나옵니다.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치시는 삼중사역의 동기를 말해주는 것은 “불쌍히 여기셨다.”는 단어입니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단어는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해 있는 민중들의 고통에 주님께서
깊이 공감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셨기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병을 치유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공감의 힘으로 하나님나라 사역을 감당하시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공감의 대가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올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디어진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진 추위 속에서 굶주리며 떨고 있는 북한의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내복을 보내주자는 호소에 귀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나서 이웃의 고통에
민감해져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보다 더 귀한 변화는 없습니다.
제발 아픔에 함께하는 공감의 힘이 널리 퍼져서 우리 사회에 공동체적인 연대감이 확산되고,
남북한의 관계가 따뜻하게 진보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